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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6편을 읽다가

HIT 807 / 정은실 / 2007-10-30




요즘 참 바쁩니다.

여러 해를 준비했던 프로그램(씨앗에서 숲으로)이 오픈되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큰 외부 프로젝트가 하나 발생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연초에는 계획에 없었지만 최근에 책 한 권으로 교산과 함께 정리하려 했던 한 과목을

고객사와 사이버 과정으로 함께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또 한 두개의 외부 프로젝트가 발생이 될 것 같아서

하루 하루의 시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바쁜 중에도 마음이 참 편안합니다. 아이들이 찾아와서 옆에 앉아 말을 해도,

예전에는 `엄마 바쁘니까 잠시 후에 이야기하면 안될까?`하고 말을 자르거나,

`아, 그래?`하고 건성으로 들어넘기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대로 들어줄 때가 많습니다.

마음에 큰 공간이 하나 생겨서 바쁘게 바삭대는 마음들이 서로 부딪혀 거칠어지지 않게

완충해주고 있는 어떤 것들이 그 사이에 있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짬짬이 목욕하는 짬짬이 만화도 봅니다. ^^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큰 아이 찬빈이에게 다양한 만화가를 만나게 하고 싶어서

허영만 선생의 `식객`을 시리즈로 사다주었는데, 제가 더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어제 욕실에서 그 `식객` 16편을 읽다가 좋은 시 하나 건졌습니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참 따뜻하고, 내 노동의 값어치를 생각하게 하는 시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의 시장가치만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기여를 하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40여년 살아오면서 내가 세상에 기여한 것보다

이미 내 앞에 살았던 사람들이 세상에 기여한 것을 통해 내가 받고 있는 것이 더 많음을

마음이 바삭거려질 때마다 생각하곤 합니다.

식객 16편이 그 생각을 다시 살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