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에게 보낸 편지
HIT 664 / 정은실 / 2009-02-08
책이름 : D에게 보낸 편지
글쓴이 : 앙드레 고르
옮긴이 : 임희근
펴낸이 : 학고재
-------------------------------------------------------------------------------------------------------------------------------
아주 얇은 책입니다.
샤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했다는 사상가이자 언론인인 앙드레 고르.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선구적인 노동이론가이자
생태주의를 정립한 초기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가,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랑하는 아내를 곁에서 간호하며
삶의 거의 마지막 시기에 작성한 글입니다.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아내와 함께 했던 쉰여덟해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비록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쓴 글이라 완전히 객관적 시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만약 앙드레 고르가 말하는 그대로의 인물이 그의 아내였다면,
그의 아내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의 남편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산 여인 같습니다.
글을 쓰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남편의 아내로 살면서
그녀 도린은 삶의 오랜 기간 동안 경제적 책임도 져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타고난 낙천성과 다재다능함과 관계를 맺는 능력과 지성과 매력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늘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낸 여인 같습니다.
설령 그녀가 그러한 여인이 아니었다하더라도,
남편 앙드레 고르가 그녀에게 바친 헌사를 보면,
단 한 사람으로부터라도 그러한 헌사를 받을 수 있는 삶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글을 그대로 이곳에 옮깁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 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나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자율적 죽음을 선택하기 1년 전쯤에 이 글을 썼던 앙드레 고르는
아내와 함께 침대에서 잠자듯이 고요히 동반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삶을 같이 마감하는 것만이 반드시 지고한 사랑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 종교를 가진 분들에게는 저항을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사랑,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보며,
`부부`라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서로에게 삶의 깊은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라고 말하는 세속적인 많은 부부의 인연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헌신하며 자신의 재능보다 곁에 있는 사람의 재능을 살렸던
많은 여인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84세의 나이에 자기 삶을 반추하며
아내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남긴 한 지성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마지막에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나는 삶의 마지막에 이러한 맑은 정신으로 내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돌아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일어났습니다.
짧은 책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