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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네 주말농장에서 감자를 캐다가

HIT 1349 / 정은실 / 2007-07-09




주말에 아산에 사는 동서네 주말농장에 다녀왔습니다. 4-5 고랑밖에 안 되는 작은 밭이었지만, 감자, 고구마, 고추, 가지, 상추, 강남콩, 그리고 열무까지 심어져 있는 예쁜 밭이었습니다. 4명의 어른과 올망졸망한 4명의 아이들이 같이 서 있기에도 좁은 공간이었지만, 작은 밭에서 딱 두 봉지^^의 감자를 캐내면서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감자심기에는 시기와 조건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실망스러울 정도로 감자가 많이 맺히지 않았고 크기도 작아서 어떻게 된 것인가 했더니, 무엇을 심을까 망설이다가 심는 시기를 좀 놓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좀 더 오래 놔두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감자는 장마 전에 수확을 해야하고 그냥 둬도 더 자라지도 않는답니다. 그리고 감자를 심은 후에 흙을 좀 더 높이 쌓아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았더니 알이 굵어지지가 않았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밭에 벌레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어요. 농약을 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인데도, 다리가 많거나 없는 벌레들을 보면서 일단 느낀 것은, `징그럽다`라는 것이었어요. 그 느낌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아직도 좋은 것만 가지려고 하는 제 이기심이 선명하게 자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전원생활은 하고 싶지만 벌레들이 많은 것은 싫다... 유기농 야채는 좋지만 벌레 먹은 구멍이 있는 것은 싫다... 느리고 단순하고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경제적 궁핍함이나 사회적 초라함은 싫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만, 내 말을 예의 없이 거스르는 것은 싫다... ^^

 

세 번째로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잡초들의 생명력이었어요. 1주일 만에 오는 것이라는데, 그 사이에 잡초들이 어른들 무릎 높이만큼 자라 있더군요. 그 뿌리들이 얼마나 깊고 강한지 두 손으로 당겨도 쉽게 뽑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누가 일부러 심어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만 눈에 띄면 뽑혀버리기 때문에 더 강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더 빨리 자라는 잡초들을 보면서 참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인간이 가꾸지 않은 곳들을 푸른빛으로 싱그럽게 장식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 이름 모를 잡초들이지요...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를 선택할 힘만 있었다면 1주일 만에 뿌리째 뽑히지 않았겠지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언제든 우리는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지만,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큰 결실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 어떤 것을 얻고자 할 때에는 그것에 수반되어 있거나 그것의 또 다른 측면이기에 감수하거나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싫음`이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내가 가진 경직된 틀들이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나는 또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감자 캐다가 별 생각이 다 많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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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7시부터 모여서 감자 캐기 하느라고 많은 식구들 아침까지 챙기며 수고를 많이 한 동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내년 이맘때에는 작은 봉지로 두 봉지가 아니라 큰 포대기로 두 포대기 감자를 수확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올망졸망 예쁜 밭에도, 현이네 네 식구의 마음 밭에도, 중턱으로 진입하는 현이 엄마 아빠의 삶의 밭에도 의미 있는 땀 흘림과 풍성한 수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감자 잘 캐고, 아침 잘 먹고, 공부 잘 하고 왔습니다. (큰 알만 골라서 담아 준) 감자, 가지, 상추 봉지에 기원하는 마음 가득 담아 날려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