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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11개

HIT 569 / 정은실 / 2007-10-12



최근에 제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중요한 날을 기억하려고 쳐놓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동그라미입니다. 한 달을 마무리하며 동그라미 다섯 개를 치기도 하고 하루를 지낸 다음에 동그라미를 하기도 합니다. 몇 달간의 달력을 가만 지켜보니 한 달이 다 지난 다음에 동그라미를 했을 때와 하루를 단위로 동그라미를 했을 때의 제 생활이 좀 달랐습니다.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을 때에는 매일 동그라미를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매일을 단위로 동그라미를 할 때에는 `하루`라는 시간을 들여다보고 다음 날을 생각해볼 정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10월 달력에는 11개의 동그라미가 쳐져 있습니다. 어떤 날은 잊어버리고 지나갔다가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한꺼번에 치기도 했지만, 작은 메추리 알같은 동그라미 11개가 10월 달력 위에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한 달이 시작될 때마다 그 달의 서원을 적어보는 의식(ritual) 외에 매일 동그라미 치기 의식을 하고 있는 것은 삶을 재편해가는 일상의 힘, 그리고 그 일상을 구성하는 하루의 단위가 매우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쓰는(때로는 같이 사는 사람과 서로 대화하며 쓰기도 합니다^^) 짧은 `성찰일기`와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쓰는 `모닝페이지(때로는 나이트페이지를 씁니다^^)`를 통해서 하루를 만들어가는 힘을 늘리고 있습니다.

 

일상에 너무 많은 자기규율을 위한 장치를 하는 것은, 오히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상황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일에 유연하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의식(ritual)를 스스로 만들고 실천해보는 것은 특히 저같은 프리랜서에게는 삶의 적절한 리듬이 됨을 느낍니다.

 

또 이러한 의식들을 같이 해갈 수 있는 벗들이 있으면 그 즐거움과 지속적인 실행의 힘이 더욱 커짐을 요즘 확인하고 있습니다. 성찰일기는 같이 살고 있는 사람과, 그리고 `코칭의 기법과 실제` 수업에 참가하시는 분들과 같이 쓰면서 정기적으로 그 느낌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모닝페이지는 얼마 전에 만들어진 `모닝페이지 커뮤니티`의 여덟 명 멤버들과 같이 쓰면서 격주로 off-line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0월 달력에 동그라미 31개가 가득 그려졌을 때, 나는 이 10월을 어떤 의미로 마무리하며 새로운 또 한 달인 11월의 서원을 쓰고 있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그때쯤 나무들은 훌훌 나뭇잎을 떨구고 많이 가벼워져 있겠군요. 나도 그렇게 `비워지기 위한 채움`으로 나머지 동그라미들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