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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연수원의 주사위를 보며

HIT 669 / 정은실 / 2007-10-18



오늘 하루 어느 연수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제가 3년 동안 승진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중 한 과목을 개발하고 정기적으로 출강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은 대리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8시간 동안의 커뮤니케이션 강의가 있었습니다. 대상들에 대해서도, 주제에 대해서도, 건지산 기슭에 자리잡은 그 아름다운 연수원 공간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가진지라, 하루 강의는 몸은 약간 힘들었지만 즐거웠습니다. 특히 오늘은 참가자들과의 소통이 깊어서, 38명이나 되는 인원과 함께 있으면서도 소그룹과 대화를 나누는듯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강의실에서 쉬는 시간에 제 눈길을 유난히 멈추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로 세로 높이가 15cm 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주사위였습니다. 그 주사위의 용도는 교육 도중에 발표순서를 정하거나 특정 팀을 선정할 때 흥미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저도 강의 중에 한 번 정도 그 주사위를 사용하곤 합니다. 단순한 주사위 굴리기이지만 그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발표같은 것이 있을 때 지원자가 없는 경우 그냥 특정인이나 특정 번호를 호명하는 것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주사위를 굴리게 되면 주사위가 강의실 바닥을 구르는 동안 즐거운 긴장감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한 면으로 주사위가 멈추어 한 번호가 선정이 되면 강의실에는 환호성이 일어나고 지명된 사람도 훨씬 편안한 분위기에서 앞으로 나서게 됩니다. 다 큰 어른들이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교육 분위기를 일시적이지만 전환을 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본 그 주사위는 아마도 한 차수의 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한두 번 정도씩 강의실 바닥에 던져졌을 것인데, 얼마나 많이 바닥을 굴렀는지 긁히고 벗겨져서 험한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3년전쯤 처음 보았을 때에는 선명한 색깔에 반짝이는 비닐에 싸인 예쁜 모습이었는데 언제 이 주사위가 이렇게 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사위가 이렇게 닳을만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많은 차수의 교육이 진행되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그 주사위 하나를 바라보다가, 자신들이 개발하는 교육과정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고민해보고 실험해보았을 과정개발자들과 과정운영자들의 초기의 열정이 떠올랐습니다. 그들과 함께 과정개발을 했었고 개발된 내용들을 잘 정착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실험들을 했기 때문에 저와 그들의 그 초기열정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금 그 열정들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주사위가 닳아버린 것처럼 그 열정도 많이 무디어져서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습관적으로 과정을 운영하고 강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첫 열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더 설렐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새로웠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적인 것들이 되어버리는데, 그 일상 속에서도 시작의 열정, 첫 만남의 열정, 처음의 호기심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강의를 마치고 제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지금, 마음 속에서 계속 주사위가 굴러다닙니다.

이 주사위가 멈출 때쯤 답을 찾아내보겠습니다.


첫 열정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같이 답을 한 번 찾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