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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풍경 하나. 나무들의 실루엣.

HIT 554 / 정은실 / 2007-12-05



오늘도 강의가 있어서 영동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지난 주에 길이 막혀 고생을 했던지라 아직 어둠이 깔린 시간에 집을 나섰습니다.

연속해서 3일째 강의라 피곤한 몸은 따뜻한 이부자리를 빠져나오기 힘들어했지만,

여명이 걷히며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새벽운전이 참 좋았습니다.

 

점점 달라지는 하늘빛도 아름다웠지만,
그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난 겨울나무들의 실루엣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습니다.

신선한 봄잎들이 `있어서`, 싱그러운 여름잎들이 `있어서`, 화려한 가을잎들이 `있어서`,

지난 봄 여름 가을의 나무들은 아름다웠지만, 겨울나무는 `있던 것이 없어져서` 아름다웠습니다.

 

겨울나무를 보다가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더 가지면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우리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버리고 비움으로써 더 충만해질 수 있음을 우리는 왜 자주 잊어버리는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이 더 높게 더 화려하게 가지고 싶게 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내 안에 이미 얼마나 많은 자원이 있는지 알지 못함이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지 못함이 아닐까요,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단지 무엇인가를 외부로부터 더 얻는 것만이 아님을
깊게 통찰하지 못함이 아닐까요,

내 안에 있는 더 깊은 무엇인가가 충족되지 않아서 그 허허로움이
엉뚱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모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년 전쯤 처음으로 `겨울나무`가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겨울나무`를 보다가 나무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다가 내 안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는 나무, 잎을 달고도 꽃을 피우고도 단풍이 들고도 잎이 지고도 밉게 꺾이고도
옹이를 갖고도 그저 그대로 성장을 지속하는 아름다운 나의 나무를 봤습니다.

그때 이후, 나무가 아무리 무성해지고 화려해져도 그 무성함과 화려함을 만든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들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잎과 열매를 달고 있다하더라도 나는 나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것을 겨울나무로부터 배웠습니다.

그 고마운 나무들이 지금 산과 들에 가득합니다.

 

여러분, 이른 새벽 길을 나서실 일이 있으시면 나무들의 실루엣을 한 번 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