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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풍경 둘. 새들의 집.

HIT 628 / 정은실 / 2007-12-08

 


잎들이 사라진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새들의 집이 보입니다.

날아다니는 새들은 많은 것 같은데 정작 새집은 몇 채 보이지 않습니다.

산에 집을 짓는 새들이 많은 것일까요, 집 없이 사는 새들이 많은 걸까요?

 

나무마다 새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크기와 모양도 같지 않습니다.

아마도 바람이 불고 흔들려도 잘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나무에만 새들이 집을 짓나 봅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새집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참 감탄스럽습니다.

 

겨울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새집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2-3년 전쯤의 일입니다.

운전 중이었는데 길이 막혀서 도심의 도로에서 오래 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무료해진 시야에 가로수에 혼자 집을 짓고 있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근에 산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공기도 좋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 집을 짓는 새의 모습이 의아했습니다.

그 의아함도 잠시, 나는 집을 짓는 새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새는 부리에 자기 몸보다 더 긴 나뭇가지를 물고 이미 여러 개의 나뭇가지를 걸쳐놓은 위로 또 다른 가지 하나를 올려놓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습니다.

푸득푸득 날개 짓을 하면서 새는 가지를 올려놓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막혀있는 길 덕분에 나는 오래 새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제법 긴 시간동안 새는 나뭇가지 하나 올려놓는 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나뭇가지 하나를 제대로 올려놓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 새를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 새는 올 해 처음으로 집을 짓는 새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미가 집을 짓는 모습도 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제대로 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어떤 힘이 저 새가 저렇게 집을 짓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도 새의 유전자에 기억되어 있는 것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교통흐름을 따라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그 새의 모습이 해마다 겨울나무 위 새집들을 볼 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새집의 영상, 그 영상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의 유전자에는 무엇이 기억되어 있을까......

내 부모님, 내 부모님의 부모님, 내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내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아득한 그 어느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그 무엇들이 기억되어 있겠지요.

 

문득 ‘나’라는 존재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