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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모님 장례식에 다녀와서

HIT 779 / 정은실 / 2007-12-15



오래 병석에 계시던 시이모님이 그저께 돌아가셨습니다.

5년 전 세상을 떠나신 시어머님의 언니가 되는 분입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여러 해이지만,

월남을 하셔서 홀홀단신이셨던 시아버님은 아내의 가족을 친가족처럼 여기셨기 때문에

시이모님의 별세로 인한 상실의 슬픔이 크신 것 같았습니다.

이제 팔순이 되시는 시아버님은 시어머님이 떠나신 후에 내내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도

장례식장을 떠나려하지 않으셨습니다.

7남매에 손주들까지 많아서 북적대는 장례식장이었는데도 함께 밤샘을 하지 않고 새벽에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 자식들을 많이 나무라셨습니다.

오늘 눈비가 뿌리는 겨울 날씨에 오랜 시간 하관을 하고 봉분을 만드는 동안

시아버님은 내내 그 옆을 지켜며 서 계셨습니다.

 

어른 키만큼 파진 깊은 구덩이에 시신이 내려지고 흙이 뿌려지는 동안

미동도 않으시고 그 광경을 지켜보시는 아버님 모습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신 분처럼 고요하면서도 허허로워보였습니다.

팔순의 아버님은 그 광경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셨을까요...

 

......

 

삶이 지나치게 무료하거나 우울하거나 가볍거나 무거울 때에는

장례식장에 다녀와보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육신의 작용을 멈추고 누워있는 곳에

그 자식들이 곡을 하고, 그를 알거나 그 자식을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 예를 갖추고,

음식 먹는 소리, 웃음 소리, 화투장 넘기는 소리,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가득한

삶의 작은 축소판같은 공간.

다른 사람의 손에 마지막 옷이 입혀지고

딱 작은 육신 하나 눕힐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져서

조그만 봉분 하나 올려지는 흙 속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지점.

 

삶이 유한함은 생명가진 것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살게 하는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10년이나 50년 이상의 삶의 더 주어진다 해도 이 유한한 삶의 속성은 별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인 삶의 유한함을 두려워하거나 덧없어 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실천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상의 부질없는 것들로부터 참 많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의 삶만 역사에 남아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의 삶도 그를 아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람의 일생은 삶이 `~~~할 수도 있음`에 대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시이모님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나의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갈 혹은 내가 경험하게 될 앞으로의 역사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내가 대지로 돌아갈 그날, 내 영혼이 나의 육신을 지켜볼 수 있다면,

가장 자애롭고 가볍고 평온하고 빛나는 기운으로 내 육신을 꼭 보듬어안아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 오랜 세월 동안의 육신의 고통에서 이제 자유로워지신 시이모님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시아버님의 건강과 시아버님이 더 깊게 황혼의 기쁨을 경험하시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