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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짙고 긴 안개 속을 운전하며

HIT 536 / 정은실 / 2008-01-08



어제 9시간 동안의 강의를 마치고 경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탄진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갑자기 짙은 안개를 만났습니다.

곧 없어지겠지 했는데 그 안개는 천안 지점까지 짙게 이어졌고

평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사이 사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운전을 하다가 잠깐씩 안개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깜깜한 밤에 가로등 불빛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를 만나서

한 시간 반이 넘도록 그 속에서 운전을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5미터 앞도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 안개에 갑자기 휩싸이자

온 몸이 긴장이 되면서 반사적으로 속도가 늦추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앞 차의 비상등 불빛을 놓칠세라 온 주의가 앞차에 맞추어졌습니다.

 

그 다음 느껴진 것은 답답함이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인데 남은 여정이 먼데

바로 몇 미터 앞의 시야만 확보하며 천천히 달리며 참 답답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안개 속을 한참을 가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답답해졌습니다.

 

또 느껴진 것은 묘한 연대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가 바람처럼 흐르며 덮쳐드는 한밤의 고속도로를

알지 못하는 차들과 함께 비상등을 켜고 서로를 조심하면서 달리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끝이 나지 않는 안개에 익숙해지자

주변이 관찰이 되며 머리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긴 안개 속처럼 끝이 보이지 않게 혼란스러울 때 참 사는게 답답하고 힘들겠다...

혼란스러울 때 누군가가 앞에 있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고맙구나...

다들 감속하는 이 와중에도 질주를 하는 차들이 있구나...

따라가기 편하다고 앞차만 따라갈 수는 없다, 때로는 위험해도 내가 앞차가 되어 내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살아가면서 가끔 짙고 긴 안개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은 더 짙어집니다.

하지만 어느 것에나 시작이 있듯이 끝은 있습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안개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그저 그대로 경험하며 최대한 즐길 뿐입니다.

두려움과 답답함과 사념들이 일어나면 그냥 일어나는대로 경험하며 들여다볼 일입니다.

안개가 흐르듯 생각도 감정도 흘러버립니다.

 

그리고 묘한 연대감, 몽환적으로 아름답던 가로등 불빛들과 같이

안개 속에서도 즐거운 일들이 있었듯이,

삶의 짙고 오랜 안개 속에서도 가만히 경험하다보면 즐겁고 감사한 일들이 있습니다.

어제 밤안개 가득한 고속도로를 안개와 함께 흐르며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