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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생신

HIT 487 / 정은실 / 2008-02-14



어제는 아버지의 일흔네 번째 생신이었습니다.

집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철없는 때라 늘 어머니가 혼자 생신상을 차리셨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집을 떠난 것이 그대로 계속 집을 떠나게되었고,

아버지 생신은 설을 쇠고 바로 며칠 후라서 생신 날에 찾아뵌 적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얼마간을 송금하고 전화 한 통화만으로 인사를 드릴 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번 생신은 저희 집에서 차렸습니다.

지금 암투병 중이셔서 저희 집에서 통원치료를 하시는 아버지는

최근에 기적처럼 자신의 병을 이기고 계셔서 저희들을 감동시키고 계십니다.

하지만 워낙 병이 위중하신지라,

이번 생신은 맞는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부산으로 발령이 난 오빠네 가족까지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바깥에서 생신상을 차려드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 날짜에 생신을 생신같이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뿐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할까 고민만 하다가,

아마도 아버지가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으셨을 것 같은 이벤트를 만들어드렸습니다.

케이크에 불 끄기와 온 가족의 정성어린 글이 담긴 생일 카드 드리기,

그리고 예쁜 접시에 예쁘게 장식된 음식들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촛불을 끄고 생일 카드를 받으시고,

이것 저것 음식을 드시며 아버지는 참 즐거워하셨습니다.

평소보다 더 많이 드시고 소화도 잘 시키셨습니다.

 

......

 

아버지의 병환으로 최근에 생활의 리듬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참 감사한 마음을 더욱 자주 느낍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버지 손 한 번 이렇게 자주 따뜻하게 잡아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이마에 손을 대보는 일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한 생신상도 차려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어디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먼 길 핑계삼아 일 년에 몇 번쯤 찾아뵙다가,

어느 날 아버지가 멀리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서야 아버지를 많이 많이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

 

아버지 생신상을 차려드리다가 소원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내년 생신상도, 그 다음 해의 생신상도, 또 그 다음, 또 그 다음 해의 생신상도

꼭 제가 차려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곁에 계셔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