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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글을 좀 쓰나?`

HIT 761 / 차상민 / 2008-05-10



두려움 없이 말하고 글쓰기 프로그램에 그야말로 `우연히` 참여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얻고 있습니다.

 

`여주` 선생님의 첫인상을 보고, 몇 마디 나누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 분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고 무엇이든지 함께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직감으로 `두/말/글`에 참여했는데 이번에도 저의 `직감`은 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평소에 글 쓰고 말하기의 기회가 거의 없는 그저 일상에 쫓겨 살며 삶의 에너지가 소진되어버린 50세를 바라보는 `고달픈 생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말글` 프로그램에서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서 `나의 글`, `나의 말`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바로 나구나` 하는 내 삶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주어진 작고 하찮은 능력이라도 그것들을 찬찬히 바라보게 되었고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하게 되었습니다.

 

말하고 글쓰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재능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글을 쓰려면 쓰는 시간보다 `명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나로서는 글쓰기가 고역이었고, 말하기는 어릴 때부터 어눌하다고 가족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온 터라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난 40여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두말글`에서 `강제적`으로 글쓰기와 말하기를 `강요`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라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고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글쓰기 숙제를 시작 때는 종이 한 장을 메우는데 2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매일의 숙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숙제를 하지는 못하지만 머릿속에서는 항상 말하기와 글쓰기가 맴돌았습니다.

 

지난주에는 일주일 동안의 매일 숙제를 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날 하루에 3일치 숙제를 몰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놀란 것은 제가 3편을 쓰는데 1시간 반 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더욱 놀랍고 고마운 것은 제가 쓴 글을 제가 읽어보고 `참 잘 썼다`라고 스스로 인정해 주었다는 겁니다. 비록 이 글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고 못난 글일지라도 저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해 준 글이라는 점에서 저에게는 의미가 있는 글입니다.

 

`여주`선생님의 권유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제 막 글쓰기 훈련을 시작한 사람의 글이니 그리 알아주십시오.

 

이 글은 쓰면서 저는 `즉석 스피치`하듯이 썼습니다. 3분 안에 말하듯이 했고 주제도 즉석 스피치에서 던져지듯 주어졌다고 가정하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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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말하기)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비밀번호를 분실했을 경우를 대비한 질문사항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질문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이란 것입니다. ‘나의 보물 1호는?’ 이라던가 ‘가장 친한 친구는?’ 이런 질문들은 시간이 지나면 헷갈립니다. 보물1호가 바뀐 적도 많고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를 적었는지 기억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초등학교는?’ 이라던가 ‘나의 어머니 성함은?’ 이런 질문은 너무 뻔해서 도대체 보안확인용 질문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이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매우 분명할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보안성’이 뛰어날 정도로 안성맞춤인 질문입니다.

 

 

저는 파전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합니다. 어머니가 부쳐주시는 파전은 앉은 자리에서 저 혼자 몇 단이라도 먹습니다. 그리고 파전을 먹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솟습니다. 몸이 아플 때 파전을 먹으면 곧 나을 것 같다는 신비스런 믿음까지 가지면서 파전을 먹곤 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 꾸중을 듣거나 어머니와 서먹서먹해지고 난 후 어머니는 화해의 표시로 말없이 파전을 부쳐주시곤 했습니다. 파전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고 아무리 배불러도 먹을 수 있는 저의 유일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저는 파전을 좋아한다고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파전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의 파전을 생각하고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맛없는 파전’을 권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파전은 일반 파전과 다릅니다. 파전의 명품이란 ‘동래파전’에는 파보다도 고기나 해물 등 다른 것이 많이 들어갑니다. 저는 그래서 동래파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파전에는 파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의 굵기는 5~7mm 정도의 이른 봄의 햇 파이어야 하고 밀가루는 파와 파를 연결하는 접착제 정도의 역할만 할 수 있도록 소량을 넣어야 하며 너무 굽지도 말고 파의 쓴맛이 없어질 정도로만 살짝 불에 대쳐야 파의 향이 풍부하고 맛이 제일 좋습니다. 저는 이런 파전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파전입니다.

 

 

제가 이런 파전을 좋아한다고 하니 어머니께서는 밖에 나가서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못살아서 파전에 고기도 못 넣고 해주니 입맛이 그렇게 굳었다고 사람들이 말할 것이니 못산 티를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군것질 거리가 없어서 봄에 싼 파를 사서 파전을 해주다보니 제대로 파가 익기 전에 허겁지겁 먹든 버릇으로 덜 익을 파전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제발 창피하게 밖에서는 그런 파전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는 창피해서 밖에서 파전을 좋아한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파전을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와 웬만큼 친한 사람도 제가 파전을 좋아하는 것을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파전을 쉽게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저에게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가 가장 소중한 사람만이 저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파전은 저에게 남다른 감동과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스런 음식이 있다는 것은 정말 짜릿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이란 비밀번호 확인용 질문을 웹사이트에서 접할 때 저의 기분은 남모르게 유쾌해집니다.

 

 

결혼하여서 한동안 파전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연세도 많으시고 기력도 쇠하셔서 저에게 더 이상 파전을 해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처에게 해달라고 할 수 도 없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파전을 좋아하는 것을 며느리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파전은 어머니가 저에게 가르쳐주신 입맛이기에 제 처는 파전을 만드는 것에 신나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처도 가끔은 파전을 만들어줍니다. 제 처를 만나서 풍상을 함께 겪고 아들이 성인이 된 지금 저는 제 처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의 분신이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빨리 퇴근하여 아내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이제 아내의 파전 실력이 많이 좋아져서 제가 좋아하는 파전을 만들어 줍니다. 정녕 파전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입니다.

 

 

 

당신의 삶이 15일만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말하기)

 

 

꽃을 보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듯이 꽃은 10일을 넘지 못하고 지고 맙니다. 그래서 꽃이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조화를 보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살아있는 호박꽃만 못합니다.

 

 

당신에게 15일만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을 일들을 하겠다고 할 겁니다.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순간순간을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살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오히려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오랫동안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깨닫거나 느끼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 못하게 됩니다. 평생을 잘 살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의 삶은 정말 의미 없이 끝나버리게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얻게 되거나 사형수처럼 원치 않게 자신의 시한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면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이들의 삶이 짧게 끝나는 것이 되어버릴 지라도 최소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름답게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의미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15일이 주어졌다면 저에게는 이제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루를 1년의 의미로 여기고 일 초를 한 시간의 의미로 잘게 잘라서 매 순간순간을 곱씹으면서 살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어진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충분히 느끼면서 살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대단한 일을 하면서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의 하찮은 일들로도 얼마든지 크나큰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일상에 숨겨진 보배 같은 가치들을 발견하면서 고마워할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저는 그야말로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15일이 지나고 저에게 마지막 날이 왔다면 전 다리가 후들거리며 지난 14일간의 고마움과 감동과 기쁨을 다 잊어버리고 두려움에 휩싸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처절하게 후회하며 가느다란 실오라기라도 붙잡으려 발버둥을 칠 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을 느끼며 괴로워할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저에게는 슬프고 괴로운 일이겠지만 그 역시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일 겁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겸손할 수밖에 없는 자세로 돌아와서 무에서 태어나 다시 무로 되돌아가는 인생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마치는 것이,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그래서 인생이 더 아름다운 것임을 나의 삶으로 겪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저는 그렇게 말할 겁니다. 그래도 나는 꽃보다 5일을 더 살았다고.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말하기)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행복해 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것처럼 행복했고 금메달을 딴 양정모 선수보다 더 행복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이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또 하루하루의 고달픈 삶속에 빠져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성장 과정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많이 떠올려 봅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매 순간마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순간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결과적으로 나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도 있었고 또는 불행으로 이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행복한 순간은 양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저의 나이가 인생의 전환점에 들어서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은 짜릿한 감동과 전율이 있어야만 행복한 순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것보다는 평온함의 행복에 더 감동을 느낍니다. 물론 평온한 그 당시에는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고 지나칠 경우가 많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평온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평온함의 바탕위에 기쁨과 슬픔을 얹고 삽니다. 짜릿한 기쁨이 헛된 것으로 판명 날 지라도 기쁨 그 자체를 잠시 즐길 수 있는 것은 평온함의 바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슬픔이 시간이 지나면 이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것도 평온함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평온은 우리에게 짜릿한 순간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지라도 우리에게 매 순간을 행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순간의 연속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을 감사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