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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 몇권을 읽고

HIT 9520 / 최학수 / 2008-05-30



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보지 않겠다 작심했었는데, 최근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책을 찾고야 말았습니다.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인터넷을 뒤지며 신중하게 서너권을 골라 보았습니다. 책에 대한 높은 기준을 가진 내가 고른 것이기에 선택한 책들은 모두 훌륭했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새겨 두어야 할 조언에서, 그리고 좋은 글을 실제로 구현한 책 자체에서,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언에서 공통되는 내용 하나는, 좋은 글을 쓰는 기술(스킬)들을 잘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결하게 써라, 한 단락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아라, 디테일을 기술하라, 진부함을 답습하지 말라 따위입니다. 가장 강조하고 있는 기술 중의 하나가 간결하게 쓰라는 것입니다. 이구동성 강조하는 걸 보면,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지키는 이는 그만큼 많지 않은가 봅니다. 단어, 형용 어구, 심지어 문단까지도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를 따져보고 `예`라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과감하게 쳐내라고 합니다. 이것이 왜 어려울까를 생각해보니 단순한 것은 대단한 게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단순한 사람으로 읽히고 싶지 않은 게지요.

 

책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개성있고 흡인력있는 글솜씨입니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혹은 완결적인 스토리가 주가 되는 책이 아님에도 소설 못지 않은 끌어 당기는 힘과 완급의 리듬이 있습니다. 소재가 무엇이든 그것에서 이야기와 메시지, 그리고 재미를 이끌어냅니다. 온갖 재료를 갖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 공 하나에 속도, 궤적, 위치를 의도대로 조절하는 투수가 그러하듯, 작가들은 언어를 완벽히 제어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언어의 장인들 솜씨에 한껏 감탄하고 마음껏 즐겼습니다.

 

두번째 공통점이 우리를 기죽일수도 있는데 다행히 세번째 공통점이 그런 우리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우리가 읽는 그들의 글은 읽고 고치고를 거듭한 수고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단박에 쉽게 써지는 훌륭한 글이나 그런 글을 술술 쓰는 천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음악의 천재라는 모짜르트도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그가 얼마나 심사숙고하고 몰입하고 애쓰면서 작곡하는지를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시선을 끄는 도입, 도입의 흥미를 유지하는 그 다음 글, 가벼운 에피소드, 감탄사, 사소한 단어 이 모든 것에 작가의 의도와 계산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한 순간의 영감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초고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강조하는 공통점은 글은 정직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글은 현란한 기교가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의 진정성, 그 사람의 내면을 얼마나 정직하게 담고 있는가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글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며 오직 그것을 위해 뼈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역설합니다.

 

글쓰기 책을 읽고 나니 많이 배운 것도 같고, 또 별로 배운 게 없는 것도 같습니다. 그 내용이라는 게 익히 들어보았거나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평가 절하하고픈 심사가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글쓰기에 대한 상식을 확인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한 것만 해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닙니다. 앞으로 글을 쓸 때 실제적인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책의 가치에 대한 최종의 평가를 독자의 변화에서 찾는다면, 이번 독서의 가치는 읽고 난 후 나의 글쓰기에서 나타난 변화에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독서로 인해 글쓰기가 더 쉬워졌거나 더 잘쓰게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효과야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입니다만 글쓰기에 관한 학습과 변화를 생각할 때 글쓰기의 본질적 특징에 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지적 활동이 전부가 아닙니다. 글쓰기는 온 몸으로 하는 전신 운동입니다. 글은 손가락이 기억해서 문자로 풀어내고, 손과 함께 순간 순간 눈과 뇌가 협응하고 심장이 느낌을 피드백하며 또한 다리와 척추가 굳건히 몸체를 받쳐줘야 합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글쓰기 운동은 부단한 반복과 익히기를 요구합니다. 글의 감각을 온 근육과 혈관 속에 각인시켜 놓지 않으면 감탄을 자아내는 장인의 솜씨, 내면을 드러내는 진솔한 감동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이 읽고,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했나 봅니다.

 

글쓰기를 위한 속성 과외를 받을까 하고 책을 읽었지만 결국 마주한 결론은 `多讀, 多作, 多想量` 입니다. 좀 허탈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듭니다. `정직함`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수고를 들인만큼 글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마음이 놓입니다. 이번 책들이 저에게 선사한 가장 값진 메시지는 정직한 땀흘림입니다. 이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그 많은 페이지들을 읽었나 봅니다. 속성을 포기하고 정직한 노력으로 인도해 준 이번 책 읽기가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