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개발연구소 로고

주말강의 VS 막내와의 산책길 대화

HIT 730 / 정은실 / 2008-07-27

 



주말이었지만 강의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다른 강의보다 여의치 않았고, 내가 충분히 학습관계를 형성하지 못해서

평소보다 에너지가 두 배나 더 들어갔습니다.

반면 학습효과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차기 강의를 위해서 원인분석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느낌을 지우려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싶어서 그냥 구름이 흘러가듯 마음을 내버려뒀습니다.

 

그랬는데 그 마음이 구름이 걷히듯 가벼워졌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내 산책길을 따라나선 막내와 한 시간쯤 함께 산책을 하면서 그랬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산책길을 막내와 천천히 걸었습니다.

막내에게 걸음을 걸으면 몸의 어디가 움직이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발, 발목, 무릎... 하더니, 배도 움직이고 뱃속의 근육도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아차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는 느낌을 참 잘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몸을 느끼며 계속 걷는데, 막내가 종알종알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방학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자꾸 미루고 있어요, 제가...

영어가 어려워졌어요. 이제 테이프 듣지 않고는 대충 못하겠어요...

저번에 학교에서 영어시험 봤는데요...

심각한 일이 있어요, 엄마...

책장 정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책들을 나누면 될지는 않겠는데,

만화책, 만화책 아닌 책, 시리즈로 된 것, 아닌 것, 자주 보는 책, 가끔 보는 책,

그렇게 나누면 될 것 같은데, 무슨 책을 버려야 될지 모르겠어요...

재수 없는 애가 있어요, 엄마. 걔는 자기 좋은 대로만 하려고 그래요...

 

방학 이야기, 학교 이야기, 하고 싶은 일 이야기, 맘에 들지 않는 친구 이야기... 그냥 아, 그래... 하고

들어주었을 뿐인데 아이의 이야기는 한 시간 내내 끝이 없었습니다.

이 녀석이 이제 같이 대화가 되는구나 싶어 대견스러웠습니다.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자란 것이 보여 흐뭇했습니다.

집안에 있을 때도 가끔 옆에 와서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종알대며 오래 풀어놓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산책길을 함께 같은 방향을 보며 다른 가족 없이 둘이서만 걷는 것이 평소보다 깊은 이야기를 하게 했나봅니다.

아이랑 둘이서 이렇게 손잡고 자주 데이트를 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고받으며 마음 갈피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들이 흘러 나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이야기가 흘러나올수록 오히려 마음은 충만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어제 오늘 강의 중에, 이 느낌을, 이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해서 마음이 무겁고 허전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