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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4분30초

HIT 658 / 정은실 / 2008-11-05



두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늘 뽀뽀를 해주고 다독여서 재우는데

요즘 예외인 날이 있습니다.

바로 수요일과 목요일입니다.

수목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하는 날이거든요. ^^

 

오늘도 수요일이었네요.

짧게 진행되는 수목 드라마의 성격상 부자연스러운 갈등이 자주 연출이 되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는 1시간 동안 주의를 온통 빼앗아가는 뭔가가 있습니다.

 

음악에는 문외한인 내가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다가 클래식과 오케스트라의 감미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연만이 아니라 조연들의 삶의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돋보이는 드라마를 보며

이 드라마의 작가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구나를 느낍니다.

 

오늘은 취임식 축하공연을 하라는 새로 선출된 시장의 압력에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주인공(시향 지휘자)이

처음에는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사표를 내려고 하다가

단원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진실을 위해서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고민 끝에 취임식장 무대에 쓴 그는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상황을 연출하며

딱 그 자신답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단원들의 자존감까지 살려줍니다.

 

오늘 그가 보여준 공연 `4분 30초,`

4분 30초간 지휘를 시작한 자세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각처럼 조용히 멈춰있고 난 후

그는 말합니다.

주변의 소리를 들어라. 평소처럼 행동하라. 자기 생각, 마음을 그대로 봐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감정, 생각, 하는 행동이 바로 그대로 당신 자신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가 일어나는가. 그것이 당신이다......

대사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맥락으로 그가 말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라마라서 드라마틱하게 처리되었지만 그의 드라마틱한 공연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제가 아니라 만들어진 부자연스러운 드라마 상황 속에서 보여진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자연스러워 보이는 우리의 실제 상황 속에서는 잘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런 진실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드라마나 영화, 각종 예술의 힘이지요. ^^)

 

그런데 멈추어 경험하는 순간은 4분30초 무연주 공연만이 아니군요.

삶에는 멈추어 경험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자주 접하는 상황으로는 대화 중에 생기는 침묵이 있고,

바쁜 일이 끝난 후에 다음 일을 하기 전에 생기는 공백이 있고,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직장을 갖기 전에 생기는 의도적 비의도적 휴가도 있고,

명상의 시간도 있습니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 눈을 뜨고 먹고 만나고 일하고 자는 그런 일상 속에서가 아니라

멈추어진 시간, 침묵, 빈 공간, 일상의 여백에서 우리의 존재가 더 여실하게 나타남을 봅니다.

외부의 자극들에 쏠려 있던 우리의 주의가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오면서 자기 안에 있는 더 깊은 본질과 만나기 때문이겠지요.

재미있게도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듯한 고요한 멈춤 속에서

우리는 가장 치열한 자기 안의 역동들을 만나게 됩니다.

 

멈추는 시간을 좀 더 가져야겠다 싶습니다.

바쁘다 바쁘다 소리가 입에서 자주 나온다 싶을 때 더욱 멈추는 시간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그 부자연스러워보이는 시간이 사실은

가장 자연스럽게 더 깊은 나 자신을 만나게 하는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순간임을 다시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