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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병상에서

HIT 510 / 정은실 / 2008-11-21



허리 통증 때문에 입원하셨던 아버지가 오늘 척추에 시술을 받으시고 입원 중이십니다.

1년 넘게 암 투병 중이시라 그 통증도 진통제로 견디고 계시는데,

진통제로도 감당이 안 되는 허리 통증이 또 생겨서 그것을 완화하는 시술을 받으셨습니다.

엄청난 양의 진통제로도 조절이 안 되는 통증이라니

그런 통증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고통을 상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워낙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시라 시술을 하지 않으려고 미루어왔지만,

아버지의 성품으로 볼 때 정말 참기 힘든데도 참고 계실 거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시술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하신 수술 담당 의사 선생님의 말과 다르게 많이 아프셨나봅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수술하지 않을 것을 그랬다며 힘들어하십니다.

24시간 동안 허리를 꼼짝도 하지 말라고 하여 깔끔하신 분이 온몸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누워계십니다.

이럴 때는 딸이 참 도움이 안 됩니다.

상황을 이해하고, 연이은 강의로 몸이 피곤할텐데도
아무 말 않고 아버지 옆에서 병구완을 하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아버지 연세 일흔넷.

불과 30여년 후의 내 나이입니다.

 

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때 나는 지금 우리 둘째 아이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참 젊으셨고

나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힘든 일들도 뭐든 다 해결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몸마저 남에게 맡기고 고통과 싸우고 계신 것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을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서 봅니다.

십대와 이십대에는 그냥 나 하나 들여다보며 살기에도 바빴는데,

삼십대에 들어서서는 나날이 쑥쑥 자라나는 자식들 앞에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사십대에 들어서서는 아이들 모습만이 아니라

노쇠함과 질병과 삶의 황혼기의 과제들로 힘들어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또 배웁니다.

 

아이들을 보면서는 채우며 성취해가는 삶의 한 측면을,

부모님을 보면서는 가볍게 훌훌 버리며 깊어져야 하는 삶의 또 다른 한 측면을 봅니다.

 

우리 집과 경주 본가를 오가시며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을 투병을 하고 계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 못지 않게 여러 가지 지병을 안고 계신 어머니,

때로는 더 잘 도와드리지 못하는 죄송함 옆으로 슬그머니 올라오는 내 철없는 이기심도 보입니다.

부모님은 훨씬 더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기르며 참 많은 희생을 감내하셨을텐데

자식인 내 마음은 당신들 마음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함을 봅니다.

 

고통을 대신해드릴 수는 없지만,

내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오늘 밤에는 그저, 부모님께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