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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과 불빛 : 백오산방(白烏山房) 1박2일 후기

HIT 1285 / 정은실 / 2008-12-08


 

 

지난 주말에 충북 괴산에 있는 작고 정갈한 흙집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천년의 숲을 꿈꾸는 숲 생태 해설가가 살고 있습니다.

그 집은 시골에 있는 여느 흙집과 다릅니다.

어린 우리 아이들도 ‘멋지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안도 밖도 모두 예쁜 집입니다.

길이 나지 않아서 아직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그 집은

승용차로는 올라가지도 못하는 산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 집 앞에 서서 걸어 올라온 길을 돌아다보면 탄성이 나옵니다.

넓게 펼쳐진 밭과 길 위 하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누가 손가락으로 쓸어내려놓은 것 같은 부드러운 산자락이 흘러내려있고,

그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그림처럼 서 있는 미루나무 세 그루가 보입니다.

그 미루나무들 뒤로는 멀리 첩첩이 둘러서 있는 산들이 한 폭의 동양화 같습니다.


그 작은 집을 품에 안고 있는 산으로 올라가면

평범해보였던 산이 많은 수종의 나무를 안고

편안하고 깊은 숲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에 또 한 번 감탄을 하게 됩니다.

숲 생태 전문가인 집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산길을 걷다 보면

숲은 어느 새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신비로운 장소로 다시 다가옵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 그 안에서 보는 것이 참 다릅니다.


그런 풍광을 알아보고 도시의 많은 것들을 버리고 그곳에 자리 잡은 그 작은 집의 주인이

여름 내내 전문가들과 함께 땀 흘려 지은 집안으로 들어가면 또 한 번 놀랍니다.

흙집도 이렇게 정갈하고 세련되게 지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특히 커다란 통유리 창이 있는 네 평 남짓 작은 서재에 있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으면

걸어 올라온 길과 밭과 산과 하늘이 한 눈에 들어봅니다.


나는 지난 주말 한 밤에 그 서재에 앉아 있다가 참 아름다운 광경을 봤습니다.

집 안의 불빛을 모두 꺼버리자 통유리 창으로 별빛과 불빛이 떠올랐습니다.

먼 하늘의 별빛과 멀리 마을 인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작은 통유리 창 안에 그 빛들이 참 곱게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에 취하다가,

먼 곳과 가까운 곳, 꿈과 현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 떠남과 만남이라는

서로 다른 것 같은 단어들의 어우러짐을 느꼈습니다.

살아감이란 다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 같은 것들 간의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알아차림은 이미 알고 있던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아마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작은 집의 불빛을 끄듯, 내 좁은 마음 안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꺼버리면

나는 언제나 그 어우러진 빛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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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간 가족들과 그곳에서 머무는 호사를 마치고 다시 도시의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집 앞 이름 모를 나무에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와서 울었습니다.

까만 까마귀가 날아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백오(白烏) 김용규`라는 이름을 가진 숲생태 해설가입니다.

그는 그 집 `백오산방`에서 이 겨울 동안에

숲과 나무와 사람의 삶에 대한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의 책이 그의 또 다른 이름 `아름다운 놈`처럼 `아름다운 책`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