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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경험의 매듭을 지으며

HIT 516 / 정은실 / 2008-12-18




3년 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강의까지 해온 한 회사의 한 프로그램을

마지막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 회사의 교육업무가 내년부터 다른 조직으로 이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3년을 일부보완 작업만 하면서 지속해온 프로그램이라서

설령 계속 출강한다 해도 프로그램 개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차수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마지막이라고 하니 유난히 마음이 많이 가는 강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마지막 참가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역량개발에 대해서 job vision에 대해서 고객과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그분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나누면서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아낌없이 나누려고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혹 저항을 일으키지 않을까,

내가 하는 말이 혹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혹 나를 왜곡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때로 내적이고 진지한 주제들을 다룰 때 올라오는 그런 약간의 불안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봤더니,

내 안의 일치감이 좀 더 커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옮긴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로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머물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준비했던 큰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때그때 그분들의 반응을 보며 내 안에서 새롭게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거침없는 물길도 흐르다가 막히는 곳들이 있듯이,

때로 어떤 분들에게는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또 다른 어떤 분들의 가슴과 머리에 일어나는 의미 있는 흔들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강의와 진행을 한 오늘,

하루 내내 온통 내 에너지와 모든 주의를 참가자들에게 쏟고 있었음에도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유난히 맑은 정신과 안정된 상태로 나는 지금 내일 교육 중에 사용할

상호 피드백 메모지를 가위질하여 자르고 있습니다.

칼을 대고 쓱 잘라도 될 종이를, 혹은 그냥 대충 잘라도 될 종이를,

혹은 그냥 알아서 내용을 작성하라고 해도 될 종이를,

반듯하게 하나씩 가위질을 하며 90여장이나 만들고 있습니다.

내일 이 피드백 용지에 적힐 내용들이 적는 사람에게도 그 내용을 읽을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 한 장 한 장 자르고 있습니다.


이제 이 교육이 다시 실시될 것도 아니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작업은 교육에 대한 평가점수를 높이기 위해 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평가에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를 담아 종이를 자르고 있습니다.

3년간 내가 몰랐던 장소에서 내가 몰랐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알게 됨으로써

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강의하고 운영하면서

그들과 그 일의 과정을 통하여 내가 배웠던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종이를 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한 가지 경험의 매듭을 짓습니다.

3년간 참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