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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빠 - `책읽어주던 아빠`가 1년만에 받은 큰 선물

HIT 578 / 정은실 / 2009-01-01



새해 첫날, 아이들 아빠가 아이들에게 2008년의 10대 뉴스를 적어와 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뭔가를 열심히 적어왔습니다.

 

다음은 평소에 자기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큰 아이 찬빈이가 적어온 리스트입니다.

( )속은 왜 그것을 10대 뉴스에 선정했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가 대답을 한 것입니다.

 

1. 중학교 입학 (공부방식이 초등학교랑 달라졌어요. 공부를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2. 올림픽 개막식을 보다 (처음으로 본 올림픽 개막식이었어요.)

3. 제야의 종소리를 듣다 (잠 안자고 버티기를 하면서 봤거든요.)

4. 푸쉬업을 해서 핸드폰을 타다 (하나도 못하던 걸 하게 되었잖아요.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5. 할아버지 팔순잔치 (그냥 기념하고 싶어서요.)

6. 흙캠프에 가다 (산중에서 평상 시와 다르게 지낸 것이 좋았어요.)

7. 우리 책이 나오다 (엄마 아빠가 책을 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8. 키가 크다 (이 사실 자체로 좋아요.)

9. 눈이 빨개지다 (컴퓨터를 너무 오래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어요.)

10. 아빠가 책을 읽어주다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다음은 활동적이고 감성적인 둘째 서웅이가 적어온 리스트입니다.

*표 다음의 글은 엄마의 추가설명입니다.

 

1. 올림픽 (글쎄요. * 이건 아마도 형이 쓰는 것을 옆에서 컨닝을 한 것 같습니다. ^^)

2. 흙캠프 (재미있었어요. 직접 느껴서 좋았어요. * 흙캠프 열흘동안 내내 물고기처럼 개울 속에서 살았답니다.)

3. 닭소리를 듣다 (처음으로 직접 닭소리를 들었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 지난 가을에 시골마을을 지나다가 닭소리를 듣더니 아이가 `와, 처음으로 닭소리를 들었어요!`라며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4. 영어학원을 다니다 (영어를 테이프가 아닌 사람에게 직접 배워서 좋았어요.)

5. 첫눈이 오다 (멋있었어요.)

6. 아빠가 책을 읽어주다 (글솜씨가 늘었어요. * 글쓰기를 무척 싫어하던 둘째의 글솜씨가 실제로 많이 늘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졌습니다.)

7. 물고기를 키우다 (처음으로 생물을 키워서 좋았어요.)

8. 10살이 되다 (그냥 10살이 된걸 기념하고 싶어서요.)

9. 캐치볼을 하다 (야구를 배워서 좋았어요.)

10. 줄넘기 쌩쌩이를 33번 연속해서 하다 (내가 해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두 리스트를 보던 아이들 아빠가 아주 행복해했습니다.

지난 1년간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거의 매일 책을 읽어주려 노력했던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책을 읽어주신 것이 어떻게 좋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아이 서웅이는 `재미 있었어요. 제 글솜씨가 늘었어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큰 아이 찬빈이의 대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찬빈 : 음, 뭐랄까, 수면제같았다고 할까...

엄마 : 그게 어떤 느낌이야?

찬빈 : 말로 하기가 힘들어요, 아무튼 특별한 느낌이었어요.

엄마 : ... 그러면, 따뜻한 느낌이니, 차가운 느낌이니?

찬빈 : 따뜻한 느낌이요.

엄마 : 딱딱한 느낌이야, 부드러운 느낌이야?

찬빈 : ^^ 부드러운 느낌이요.

엄마 : 무거운 느낌이야, 가벼운 느낌이야?

찬빈 : 가벼운 느낌이요.

엄마 : 색깔은, 푸른색 계열이야, 붉은색 계열이야?

찬빈 : 붉거나 노란... 따뜻한 색이예요.

엄마 : ^^ 그런 느낌이 네 몸 어디에서 느껴졌니?

찬빈 : (가슴을 가리키면서) 여기요.

 

큰 아이와 나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 아빠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화를 하고 있던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큰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는 작은 아이가 아니라 큰 아이가 할줄 알았습니다.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서 책에 없는 의성어를 내거나 애드립을 하면 깔깔대고 웃기를 잘했고,

다음 날 책을 읽어주면서 지난 내용을 물으면 잘 기억하면서 대답을 하곤 해서

내용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큰 아이는 동생과 달리 느낌을 잘 표현하지 않고 동생의 감정표현도 이해하지 못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몇 주 전에 백오산방에 가서 실내등을 끄자 밖으로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이길래

다른 가족들이 `와, 창밖에 불빛 좀봐. 참 예쁘다!` 그랬더니,

`동공이 확장이 되어서 그런거예요.`라고 반사적으로 말했던 아이가 큰 아이입니다.

그런 녀석이 아빠의 책 읽어주기에 대해서는 가슴으로 느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일을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지속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 아빠가

일년 동안에 거의 유일하게 지속했던 일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였는데,

그 일이 오늘 아이들이 적어준 2008년 10대 뉴스에 들어 있었다는 것은

아이들 아빠에게 큰 보상이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들 아빠는 하루 내내 내가 그 이야기를 몇 번 꺼낼 때마다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닌듯해도 아주 민감하게 부모의 마음을 느끼나봅니다.

아빠의 책 읽어주기는 사실 책 속에 말없이 실어놓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는데

그런 것을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가슴으로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올해에는 또 어떤 일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까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매일 밤의 책읽어주기와 굿나잇키스, 그리고 미소 담아 바라봐주기 외에도

엄마 아빠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줄 일이 또 뭐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