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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같은 인연, 그 인연이라는 책임감 그리고 감사

HIT 595 / 정은실 / 2009-01-16

 


찻집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메뉴판 아래에 ‘사주, 운세, 궁합 5000원’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새해 운세나 볼까요?’하는 친구의 제안에 그러자고 동의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주인장에게 서비스 신청을 했더니,

잠시 후에 주인장이 커피를 서빙하고는 함께 동석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토정비결이나 주역이 아닌 ‘난강망’이라는 생소한 것으로

사주를 6년간 독학을 하며 배웠다고 하는 젊은 주인장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꼬치꼬치 질문을 했습니다.

한 가지씩 해석을 할 때마다 무엇을 근거로 해서 그런 해석이 가능하냐고 했더니

나중에는 주인장이 이제 풀이를 그만 하겠다면서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아마도 5000원짜리 사주를 보면서 우리같이 까다로운 고객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장난삼아 호기심이 발동해서 잠시 본 사주였지만, 인상 깊은 부분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사주란 것이 운명론이라면, 즉, 내가 나의 의도를 가지고 내가 변화를 시도했다고 해도

그것도 이미 내 안에서 그런 기운이 나오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라는 뜻이라면

과연 내 운명이 어떤가를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주인장의 대답이었습니다.

주인장은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전쟁에 나갔는데, 자기가 그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안다면,

굳이 살겠다고 애쓰지 않고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겠지요.’

자신의 운명을 수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참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주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사주에는 그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의 이야기가 들어있었고,

배우자, 형제, 자식의 이야기도 들어있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 의해서, 또 그 부모의 부모에 의해서

삶의 많은 것들이 결정지어진 것이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확장되자,

함께 연결되어 있는 인연의 끈들이 아주 미세하게 끝없이 내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 펼쳐짐에서 내가 느낀 것은 책임감이었습니다.

나를 배우자로 맞은 인연으로 인하여, 나를 부모로 맞은 인연으로 인하여,

삶에서 너무도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나의 가족들.

또 그 영향의 크기는 다르다 할지라도, 나와의 인연으로 엮어진 수많은 사람들...

 

한 가닥의 실로 같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이 실 한 가닥을 잡고 보내는 기운들이 그들에게 전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크고 작은 그 수많은 인연에 깊게 머리 숙여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모든 여정에서 한 마디의 말로, 행동으로, 책으로, 글로, 미소로

영향을 미쳤던 모든 이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보내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