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개발연구소 로고

1480여통의 이메일을 정리하다가

HIT 481 / 정은실 / 2009-01-22



오늘 늦은 밤에, 그동안 무척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받은 편지함 정리하기`입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라서 계속 우선순위에 밀리다가 오늘 밤에야 시간을 낸 것입니다.

 

여러분은 받은 이메일들을 어떻게 관리를 하시나요?

나는 꼭 남겨둘 필요가 없는 편지는 바로 읽고 삭제를 해버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우고 못하고 남는 이메일들이 있습니다.

 

왠지 다시 한 번 연락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예전의 기록을 남겨두려고 저장해놓는 이메일,

글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보려고 남겨놓은 이메일,

강의 후 참가자들로부터 받은 감사 이메일들입니다.

때로는 무척 바빠서 대충 읽고 삭제버튼을 누르는 시간도 아까워서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뒀다가

쌓이게 된 이메일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드 청구서나 주기적으로 받는 이메일 서비스나 각종 안내문들이 그렇습니다.

 

오늘 편지함을 봤더니 무려 1480여통 정도가 쌓여있었습니다.

꼭 오래 샤워를 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이메일들을 삭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삭제할 때 방침은 `가능한 다 지우기`였습니다.

 

그랬음에도 또 지우지 못하고 남기게 되는 메일들이 있습니다.

 

- 해외에 나가서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있을 때 가족과 주고 받은 이메일들

- 강의 후에 받았던 감사의 메일들

- 존경하는 스승이 보내주신 짧은 답신들

- 그리고 지금봐도 제목들이 다시 한 번 읽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글들

 

1000통 정도의 이메일을 정리하여 삭제해버리면서 마음이 좀 쓸쓸해졌습니다.

그 쓸쓸함을 보다가,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고 다 모아놓곤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습니다.

성장해가면서 그런 나의 패턴을 다뤄보려고 한번씩 마음 먹고 야멸차게 버리곤 했지만

나는 아직도 뭔가를 버릴 때 가슴 한 구석이 저립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버린다고 하여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버리지 않는다고 하여 기억이 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삶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안에 모두 다 새겨져 있다.

비록 어떤 것은 뚜렷하고 어떤 것은 뚜렷하지 않을뿐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내 안에 다 있다.

그리고 크든 작든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만약 내가 과거의 어느 시간들을 돌이키고 싶다면,

지금 나에게 가능한 것은 그것에 대하여 후회하거나 혹은 그 기억에 마냥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이 또 다른 나의 과거가 될 것이므로,

지금 이순간도 또 나의 어느 한 부분에 들어와 스며들 것이므로,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좋은 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과거를 치유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앞으로 흐른다...

 

... 앞으로 어떤 이메일들을 나누며 살까... 하는 생각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