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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까 왜 그렇게 짜증을 냈지?

HIT 556 / 정은실 / 2009-05-11




저녁을 먹고 난 후에 숙제를 시작하던 아이가 짜증을 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

어휘력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되라고 2년 전에 시작했던 눈높이 한자 학습지를 막 펼친 후였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이제까지 했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걸 공부해서 뭐하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면 공부 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거라고 말을 해주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괜한 잔소리를 했구나 생각하며,

정말 하기가 싫으면 다른 것부터 하라고 했더니,

아이는 한자 학습지 대신에 일기를 쓰고, 수학문제 풀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책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쉽게 쓸까 하며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을 다시 뒤적이는 아이에게

4학년에 맞는 책을 읽어보라며 ‘어린이를 위한 배려’라는 책을 골라주었습니다.

제법 분량이 많은 책을 인내심 있게 다 읽은 아이가

아까의 짜증이 싹 가신 얼굴로 내 옆에 오더니

“엄마, 배려에 관한 책을 읽고 나니 배려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까는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을 냈지?”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많이 컸구나 싶어서 대견스러웠습니다.

짜증을 내는 어린 마음은 여전하지만 짜증나는 마음을 조절하는 힘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그런 자기 마음을 다시 돌아볼 줄 아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배려`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써놓은 그 책,

그 책의 어느 부분이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 풀어주었는지

나도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 작아진 마음을 알아차리곤 하는 나에게도

아마 그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같이 책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아이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