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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고 장영희 교수님의 명복을 빌며

HIT 691 / 정은실 / 2009-05-12





















지난 토요일 밤에 아버지 4재를 지낸 날,

대학 동문회로부터 `장영희 교수님 별세`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86년부터 89년까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분은 나의 지도교수는 아니셨지만 나는 학기마다 한 과목씩 그 분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졸업을 한 이후 한 번도 찾아뵌 적은 없지만,

맑고 따뜻한 그분의 글이 좋아서 수필집들을 사서 읽었고,

간간히 학교 소식이나 잡지에 기고하시는 글들을 통해서 살아가시는 모습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적 앓은 소아마비로 목발 두 개를 짚고 다니실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늘 맑고 힘있는 목소리와 밝은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의를 하셨던 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쏟는 큰 사랑을 글로 표현하곤 하셨던 분.

불편한 몸으로도 힘든 유학시절을 마치고 모교의 교수가 되셨고,

학문의 열정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교단에 서셨던 분.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는 당당하게 싸우기도 하셨던, 맑은 감성과 힘을 조화롭게 가지셨던 분.

 

재작년엔가, 대학 친구가 우연히 시내에서 교수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알아보시면서,

그 자리에 없었던 내 이름까지 기억해내시며 안부를 물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년 50명에서 100명 정도가 되었을 제자들의 이름을 그렇게 기억하고 계셨나봅니다.

친구는 나에게 선생님께 꼭 이메일이라고 한 번 보내드리라고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 살아가면서 그저 생각하기만 해도 삶의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고 장영희 교수님은 그런 분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불편한 몸에 세 번이나 찾아온 암과 싸워 두 번의 암을 이겨내며,

그 고통스러운 투병 중에도 삶에 대한 아름다움과 희망을 놓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그 희망을 나누신 분입니다.

비록 세 번째 암을 이기지 못하여,

유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살아갈` 기적을 이루지는 못하셨지만,

자신의 삶을 통하여 자신을 아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삶에 대한 경이로움을 남기고 가셨으니

비록 몸은 가셨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가는 기적을 이루신 것 같습니다.

 

5월7일 의식불명이 된 후에

마지막 원고, 제목까지 손수 다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던 이 책을 받으셨다고 하네요.

육신의 눈으로는 이 책을 보지 못하셨지만,

아마도 자신이 또 다른 기적을 이루었음을 의식하고 가셨을 것입니다.

 

... 그분이 가시고 난 세상도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5월의 하루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름답게 살다 떠난 한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자리에

따뜻한 울림이 일어나며 온갖 싹들이 트는군요.

분명 이 싹들은 아름답게 자랄 것이고,

또 다른 씨앗을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자리에 뿌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씩 아름다워지나봅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결코 같지 않나봅니다.

 

고 장영희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