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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부끄러움`이 삶의 힘이었던 한 큰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며

HIT 590 / 정은실 / 2009-05-27



나는 밤새 꾼 꿈을 자주 기억하는 편이고, 때로는 의미심장한 꿈을 꾸기도 합니다.

어제 밤에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야외였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과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의를 하나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멀리 있어서 상관없다 생각하며 있었는데 몇 명이 가까이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부끄러움이 일어서 옆에 있던 남편의 점퍼를 벗겨서 드러나있는 내 몸을 대충 가렸습니다.

 

대개 부끄러운 꿈을 꿀 때에는 그 즈음에 어떤 고민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 꿈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뭐지, 하는 생각을 잠을 깬 후에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동시성인지 두 지인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꿈 이야기에도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한 꿈은 이랬습니다.

 

야외에서 똥을 눴는데, 평소 같으면 부끄럽게 느꼈을텐데 그런 느낌은 없었답니다.

그 똥을 발로 다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무르지 않고 된 똥이어서 평평하게 잘 다져졌답니다.

비록 똥이지만, 나의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이 위에 밟고 올라서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똥을 다지면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시 부끄러움이 일면서 냄새 날 것을 우려해서

그 똥을 길바닥에 붙은 껌을 떼내듯이 박박 긁어냈다고 합니다.

 

한 꿈은 이랬습니다.

 

어떤 예사롭지 않은 관 하나가 자기 집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답니다.

관을 든 사람들이 자기 집 옆을 지나가다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오두막이라,

안에 무엇이 있나 궁금해하며 창문으로 자기 집을 들여다보더랍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지 못하고 숨었답니다.

 

각자의 꿈은 각자의 내적 외적 경험 속에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지만,

분명 세 개의 꿈에는 `부끄러움`에 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아침에 꿈 이야기를 나눈 지인들과 동일한 메시지를 발견하며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요며칠 나의 정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안에 부끄러움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보며,

그의 생전을 다시 조명하는 기사와 영상들을 보던 중에

나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은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그저 합의만 되면 변론도 필요없는 사건에서 별일도 않고 수임료를 챙긴 그를 원망하는

의뢰인의 눈길을 평생의 부끄러움으로 간직했다 합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는 `부끄러움`이 힘이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부끄럽다고 느끼는 데에서 끝내지 않고

그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삶을 살고자 더 뜨겁게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언장에는 그 부끄러움도 넘어선 허허로움이 보였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참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할 짧은 열 줄 정도의 유언.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서 각자의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구차하게 변명을 하거나 이유를 설명하거나 원망하거나 하지 않고

자신의 현재 마음을 담담히 적은 그 간결한 글을 보며

나는 그가 참 큰 사람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의 삶을 보며,

나는 내 부끄러움을 어떻게 다루어냈나를 되돌아봅니다.

그저 가리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제 나의 꿈은 나의 더 깊은 곳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내가 내 꿈이 보내준 메시지를 잊어버릴까 하여,

지인의 꿈 이야기까지 듣게 했나 봅니다.

 

부끄러움이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잊지 않고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뜨겁게 해내려 했던 사람,

포기하지 않는 치열한 노력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신분으로의 상승을 이루면서도

자기다운 에너지와 인간적 소탈함과 미소를 잃지 않았던 사람.

그가 계속 삶을 살아냈다면 이루었을 큰 일들을 아쉬워하며,

그의 영전에 머리 숙여 마음으로 헌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