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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대통령께 묻고싶습니다.

HIT 553 / 김용규 / 2009-05-29



농부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나는 당신이 모두 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 놈입니다.
당신이 지향하던 길과 내가 바라보던 길은 때로 한 방향이었고 때로는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당신이 이 땅의 대통령자리에 올라 일할 때
왜 저토록 무모하리만치 반듯하여 뭇매를 맞는가 당신의 어리석음을 한탄도 했습니다.
그럴거면 법전에 쓰인대로 말하고 처결하거나 변호하는 법조인으로 살것이지
왜 굳이 정치를 하는가 애석해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판이 똥파리들의 구덩이인 것을 정녕 모르는 바보인가 애석해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비열한 욕망들에 의해
하는 일 모두에 뭇매가 쏟아지고 갈갈이 찢겨나가면서
당신을 지지한다는 국민들의 비율이 백에 열로 줄었을 때도
나는 당신의 그 순수한 열정만은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너무 순수해서 그 자리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파란색의 그 불행한 기와집을 떠나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 생명의 길을 걷겠노라 했을 때,
나는 온전히 당신을 존경할 수 있었습니다.


농부야말로
땀흘리는 노동을 통해
우주의 섭리를 실천하는 가장 보람된 직업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당신의 그 선택에 깊고 깊은 존경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가난을 숙명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도
농부의 길을 천직으로 여기며 사는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생명살림의 정신을 나누려는 당신의 한걸음 한걸음에 깊고 깊은 감사를 가졌습니다.


밀짚모자 쓰고
오리농법 쌀을 수확하던 당신의 웃음이 담긴 사진에서
당신의 진짜 행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새싹이 움튼 작물을 보면서 분명
당신은 그 작물이 자라 얼마의 돈이 될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생명의 경이로운 성장을 지켜보는 것으로 그저 좋았을 것이고,
한 톨 한 톨 영글어가는 나락 한 알 속에서
우주의 놀라운 관계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직접 거둔 쌀 한 됫박으로 밥을 짓고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밥 한 숟가락을 입 안으로 넘기면서
너른 땅이 주는 무한한 고마움과 여름의 뙤약볕과 바람과 비의 고마움도 함께 넘겼을 것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여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지,
따라서 이 땅의 농부들이 얼마나 고맙고 또한
외로우면서도 충만한 삶을 사는 존재인지 직접 느꼈을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촌로로 살며 그 생생한 느낌을 확산시켜
이 땅의 그늘에 사는 이들이 조금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나누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소박한 꿈마저 부담으로 느끼는 비열하고 무도한 욕망들에 의해
당신의 본질이 처참히 유린되는 모습을 보며 마침내 내게도 분노가 일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많은 지향점에 있어 서로 달랐지만
나는 그토록 추악한 이 땅의 욕망들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꿈 속에서
소박하지만 위엄있는 관을 들고 나타난 일단의 장례행렬이 이 오두막을 찾았을 때도
나는 당신이 그렇게 훌쩍 떠나 갈 것을 의미하는 꿈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를 데리러 저들이 왔나보다...
다시 죽음을 놓고 지금 살아 있음에 대해 자성하는 계기로만 삼았습니다.


당신이 그 불행한 파란 집에 살 때 더러 들렀다는 청와대 뒤의 백사실에서
내가 첫 겨울 농사로 지은 책을 읽고 찾아온 독자들과 만나던 그 시간,
당신이 스스로 새가 되어 날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굴곡의 삶을 끝내 스스로 마치는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자꾸 솟구치는 눈물과 만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이 가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저 세상과 건강하게 소통하며 세상의 아름다운 변화에 기여하는 농부로 살고자 했던 당신의 꿈을
순수하게 바라봐주지 못하고 끝내 완전히 부수어 산산히 흩어버린
이 저열하고 비겁한 욕망덩어리의 세상에 치가 떨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죽음마저도 세상과 격리하고 싶어하는
저 가난하고 가난한 영혼들이 내가 살고 있는 `사람의 숲`의 지배자라는 사실,
그 지배자들의 사막과도 같은 숲이 지속되는 것을 그저 멀뚱히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프고 슬퍼 그저 이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기력한 모습이 우리 농민들의 삶이요 한이었음을 나는 압니다.
역사 이후 지금까지 모든 농부들의 삶이 그 잔혹한 수탈을 견디며 이어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밭에 뿌려놓은 씨앗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장 큰 위안으로 삼는 것,
나의 곡식이 사방으로 나아가 다른 수많은 생명의 삶을 부양하는 것,
그것으로 지치고 지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위안이 되는 것,
그것이 농부들의 모습임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뿌려놓은 씨앗이 아직 들판에서 자라고 있는데,
당신이 심어놓은 나무가 아직도 뒷 산 숲 속에서 자라고 있는데,
어떻게 추수를 보지 않고 그렇게 떠날 수 있습니까?


아마 그래서 당신은 바보라는 소리를 듣나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보라도 농부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제 곧 저 푸른 들판을 가득 채우며 영글어갈
생명들의 소리없는 성장을 외면한 채, 어떻게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습니까?


언제고 한 번, 나의 뒤안에서 딴 토종꿀 한 되와 괴산 탁주를 들고 찾아가
탁주 한 잔 드리면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농부의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렇게 먼저 훌쩍 떠날 수 있습니까?


인본을 넘어 생명을 사랑하는 농부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예???!!!
제발 그만 일어나 대답 좀 해보십시오!

나는 차마
당신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당신을 보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