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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행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Y에게

HIT 548 / 정은실 / 2009-07-20



지난 학기 강의를 들었던 제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답신을 쓰고 보니, 다른 분들에게도 나누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익명으로, 제자의 질문과 제 답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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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에게 큰 시련이 왔답니다. ㅠ 다름이 아니라 저의 졸업문제인데요~ 저의 고민 좀 나눠주세요. ㅠ

 

제가 1전공이 식품영양이고, 2전공이 심리입니다. 1전공으로 교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구요. 제 불찰로 심리 전필과목을 못 듣고 말았어요. 그래서 4학년을 마치고도 한 학기 더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영양사 시험이 개정으로 인하여, 내년이 마지막 해가 됩니다. 내 후년 부터는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어, 지금 상태로는 시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영양사시험이 졸업확정자만 시험을 볼 수 있기에, 제가 심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시험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영양사 시험을 보지 못하면 교원 자격증 또한 나오지 않고요.

 

제가 3~4일 생각하면서 생각한 것은 2가지입니다. 1번은 심리를 포기하고, 전공 심화자가 되어 올해로 대학교 생활을 끝마치는 것입니다(식품영양 + 교직). 2번은 개정되는 영양사 자격요건에 맞추어, 학교를 더 다니는 것입니다(식품영양 + 심리 + 교직).

 

1번을 선택하자니,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미래를 생각했던 것이 아깝습니다. 또한 앞으로 심리와 멀어질 것이 아니기에, 학위가 없는 것도 불안하구요. 2번을 선택하자니, 돈이 문제입니다. 안 그래도 비싼 등록금, 한 학기를 또 다니자니 부모님께 죄송하고요. 모자라는 학점은 계절학기와 같이 일부 금액을 내고 채울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영양사시험 자격요건이 매우 까다로워지면서, 학점뿐만 아니라 과목에도 제한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한두 과목으로는 자격요건이 메워지지가 않네요.

 

하루는 `그래, 심리를 포기하자. 학위가 없어도 대학원 가는 데는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도 하구요, 하루는 `그래, 그동안 공부한 것도 있는데, 돈 때문에 포기할 수 없지, 어떻게든 끝까지 하자.` 라는 마음도 들어요. 정답은 없을 거예요. 그래도 나중에 저에게 좀 더 긍정적일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어요. 교직을 포기하라고 하는 친구도 있어요. 교직을 포기하면 영양사 시험을 꼭 봐야하진 않거든요(심리 + 식품영양). 그런데, 제가 앞으로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교직을 이수한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이것도 아주 마음에 들진 않네요.

 

계속 고민중이예요. 수강신청변경기간까지 시간이 있는데, 얼른 마음을 정하고 싶어 메일 드려봅니다.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제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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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Y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어젯밤에 꾼 꿈이 떠오르네요(내 꿈인가 했는데, Y의 이메일과 관련된 꿈이었나 봐요. ^^). 꿈속에서 내가 어디를 가려고 했는데 그 길로 가는 지름길이 막혀버렸더군요. 폭우 때문에 산에서 무너져 내린 커다란 바윗돌과 흙들이 도로에 가득 쌓여서 차량이 전혀 통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원래 가려했던 목적지에 가야했어요.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돌아가면 얼마나 더 시간이 많이 걸릴 지를 생각해보니, 지름길로는 10-20분 정도면 가는 데 돌아서 가면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답답해하다가 잠에서 깼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꿈속에서는 나는 그 상황이 참 답답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1시간 30분과 20분은 그리 큰 시간 차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려도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지금 내가 Y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세 가지예요. 첫째, ‘어려움을 가볍게 보세요.’ 우리는 뭔가를 하다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해하거나 좌절감을 느껴요. 술술 풀려나가지 않는 상황 앞에서 불안해지지요.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애물들까지 상상이 되지요. 지금 닥친 어려움만 보세요. 생각 속에서 어려움을 부풀리지 말아요.

 

둘째, ‘Y가 정말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세요.’ 얻고자 했던 자격들이 Y의 미래에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이 된다면, 한 학기의 등록금과 한 학기라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요. 앞으로 Y가 살아갈 그 긴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한 학기의 등록금과 한 학기라는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닐 거예요. 조급해하지 말아요. 등록금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하다면, 더 치열하게 공부하며 더 값어치 있게 시간을 쓸 수도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새로운 길에는 언제나 그 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배움이 있어요.’ 만약 1번을 선택해서 심리 전공을 포기하고 일찍 사회에 진출하게 되더라도, 혹은 2번을 선택하여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되더라도, 그것은 Y에게 새로운 길이 될 거예요. 새로운 길에는 언제나 새로운 경험을 통한 배움이 있어요. 여행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예정에 없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보고 누군가를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것들 같은 거지요. Y가 1번을 선택하게 된다면 학위를 통한 경력 쌓기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몰라요. 혹은 2번을 선택하여 한 학기를 더 공부하며 새로운 과목들을 듣게 된다면, 그 속에서 뜻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만남이나 통찰을 얻게 될지도 몰라요.

 

Y!

 

Y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하여 자신의 신념을 가진다면,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좋은 선택이 될 거예요.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길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예요. 두려워말아요. 이것을 선택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만 들여다보지 말고, 이것을 선택하면 어떤 긍정적 경험들을 하게 될까를 들여다봐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두 개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레는 마음으로 두 개 중에서 한 개를 선택해보세요. 그래서 일단 한 가지를 선택한 후에, 그 선택으로 인하여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도록 하세요. 어려움부터 생각하면 결정을 내리기가 힘이 든답니다.

 

삶의 행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Y에게 응원을 보내며 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