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개발연구소 로고

수면(水面)으로 돌아오며, 늦은 8월의 서원

HIT 518 / 정은실 / 2009-08-10



에어컨을 잘 켜지 않고 사는데,

오늘은 오전부터 에어컨을 켜서 저녁 늦게야 껐습니다.

놀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던 아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볼일이 있어서 베란다쪽 문을 열면 뜨거운 기운이 확 느껴질 정도로 오늘은 그렇게 더운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저께 입추가 지났고,

밤이면 열린 창문으로 귀뚜라미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토실토실 여물은 대추들도 높은 가지에 있는 것은 벌써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가을이 오기 전 여름이 가장 무더운가봅니다.

 

나의 최근 몇 주도 그랬습니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나의 오늘 마음은 청량하기 짝이 없는데

최근 나의 몇 주는 깊은 바다 속으로 깊게 잠수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가지 원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여러 가지 자가처방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운동도, 독서도, 사람 만나기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다 놓아버리고 이완하기도, 일상에 몰입하기도,

잠수를 멈추고 수면으로 되돌아오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한 일은,

이 잠수에도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그냥 그대로 몸과 마음을 맡겨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랬는데 드디어 바닥까지 가 닿았었나봅니다.

바닥으로 내려갈 때에는 그렇게 멀고 멀더니, 다시 솟구쳐오르는 것은 금방입니다.

오늘 나는 태풍 지나간 후의 하늘처럼 높고 맑고 가볍습니다.

어쩌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에도 그냥 저항없이 내려 앉았으면 더 빨리 내려갔을 것을

`이러면 안 돼.`하면서 버텼더니만 내려가는 데에 시간이 걸렸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는 이래도 괜찮아.`하며 처음부터 그냥 놓아버릴 것을 그랬습니다.

 

바닥을 치며 돌아오던 어제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문득 날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몸을 살짝 띄웠더니 공기의 흐름을 타고 몸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몸을 움직이다가 나는 높이 날아보기로 했습니다.

꿈속의 나는 높이 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아 하늘로 뻗고 두 손이 모인 지점으로 시선을 모으고 에너지를 집중하자

시선을 모은 지점에서 밝은 빛이 보이며 몸이 빛속으로 빨려들듯이 솟구쳐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껏 날아오르다가 `그만 내려오자` 생각하며 온 몸을 이완하자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내 몸은 땅으로 부드럽게 떨어졌습니다.

꿈에서 깬 후에도, 그 꿈을 기억하는 지금도 그 느낌이 기분 좋게 몸에 남아 있습니다.

 

높이 날자, 생각하며 날아올랐던 것도 나였고, 내려오자, 생각하며 내려온 것도 나였듯이,

되돌아보니, 깊이 잠수를 한 것도 나였고, 잠수에서 돌아오기로 한 것도 나였습니다.

깊고 어두운 바다 속을 움직이며 아마도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봅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 다시 수면으로 돌아오기,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기, 다시 땅으로 돌아오기,

그 기분 좋은 느낌을 기억하며,

8월10일 오전 1시 15분에, 늦은 8월의 서원을 올립니다.

 

남은 8월,

가을을 저만큼 앞에 두고 더 이 뜨거운 시간에

몸도 마음도 더욱 가벼워지겠습니다.

내가 가벼워지면 그저 아무 일도 아닌듯 솟구쳐돌아올 수 있는 길을

그렇게 깊게 깊게 가라앉아 들어갔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누군가 나처럼 잠수 중인 사람을 만나면 함께 꿈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날아오르기를 돕겠습니다.

 

-----------------------------------------------------------

 

혹시 얼마 전의 저처럼 잠수 중이신 분 계신가요?

다시 수면으로 돌아오는 법을 찾고 계신데 쉽지 않은 분이 계신가요?

당신에게 저의 꿈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