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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가 보내온 감자

HIT 640 / 정은실 / 2007-05-19




 

사람향기가 가득한 글이네요. 배우 조재현씨의 글을 퍼왔습니다. 이 글을 쓴 조재현씨도, 조재현씨 글의 주인공인 차인표씨도, 실제 그 두 분을 저는 잘 모르지만, 글에 담긴 에피소드와 글에 배인 냄새로 볼 때, 참 아름다운 배우들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배려`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그들의 우정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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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우리 집에 투박하게 생긴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보낸 사람은 차인표, 신애라였다. `설도 한참 지나고 생일도 아닌데…`하며 상자를 열었다. 감자였다. 상자 안에 차인표가 쓴 글이 있었다. 글은 친필을 복사한 것이었다. 친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라 복사된 편지를 보며 난 속으로 `짜아식, 이거 대체 몇 장을 복사했을까? 또 예쁜 짓하는구먼. 큰돈 안 들이고 묘하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동시에 이미지 관리도 제대로 하네`하며 글을 읽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자신의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경기도에서 농사를 짓는데, 강원도에 사는 한 농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셨다고 한다. 그 강원도 농부는 무공해로 감자농사를 지었는데, 팔리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자를 조금 사서 자신의 부부가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내용이었다. 감자상자 안에는 강원도에 사는 그 농부의 농장주소가 적혀 있었다. 감자는 정말 맛있었다.

 

난 감사를 표할 겸 차인표에게 전화를 했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상자 안에 있는 주소로 연락하면 계속 주문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인표의 대답은 `네…`하면서도 걱정이 묻어 있었다. 감자를 주문할 때 차인표라고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형도 밝히지 말고 주문하라는 거였다. 그것은 얼굴도 모르는 농부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배려였다. 강원도 산골에 갑자기 감자를 주문하는 이가 연예인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농부가 당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지 매년 이렇게 주문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후배지만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고 `역시 동생 하나는 제대로 뒀구나`하는 생각에 흐뭇했다.

 

지금까지 난 차인표와 영화 `목포는 항구다`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 그리고 지금 촬영하고 있는 `한반도`까지, 매년 한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찌 보면 조재현과 차인표는 정말 안 어울리는 커플이다. 그도 그럴 것이 키 크고 잘생긴 바른 생활표 남자와, 평범하면서도 극악한 캐릭터의 연기와 자유로운 생활방식 등으로 표현되는 나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물과 기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내가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인기도 아니고 종교가 같아서도 아니고 취미가 같아서도 아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이 좋아서이다.

 

어느 날 차인표와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난 솔직히 차인표의 장점과 단점을 얘기해 주며 잔인할 정도로 직언을 해 주었다. 직언의 내용은 그 후 차인표가 공개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거론해도 괜찮을 듯싶다.` A라는 배우와, B라는 배우는 연기를 하면 50점 먹고 들어가지만, 넌 50점 손해 보고 들어가는 배우다. 그러기에 넌 그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난 지금도 내 얘기를 듣는 차인표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할 수 있는 충고를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얘기를 다 듣고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은 형밖에 없었다.`며 되레 고마워했다.

 

배우의 길은 수많은 길이 있다. 훌륭한 배우의 길, 올바른 배우의 길, 연기만 하는 배우의 길, 공인의식을 가진 배우의 길. 여러 가지 길 하나하나에도 그 가지는 엄청 많다. 난 여러 길 가운데 인간적 배우의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고 싶다. 배우로서 연기는 필수고, 그 이전에 인간적인, 사람의 냄새가 나고 나서, 그 다음에 연기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차인표가 가는 배우의 길은 나와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냄새가 나는 배우의 길에 대해서는 공감하리라고 확신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내가 가장 경멸하는 연예인은 돈만을 좇아가는, 부의 상징과 함께하려는 도구로 연기를 선택하는 연예인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이 재벌 2세와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인간적인, 사람냄새 나는 만남을 이뤘는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은 동정의 가치가 없고, 같은 직업인으로서 수치심마저 들 수밖에 없다.

 

감자로 시작한 이야기가 조금은 빗나갔지만, 강원도 산골 농부의 고통을 알고, 위보다는 아래를 내려다보게 한 후배의 바른 삶이 나는 물론이고 다른 연예인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든 이에게 자그마한 감자처럼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배우/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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