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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양평에서 유턴하다.

HIT 566 / 정은실 / 2009-11-12


무려 60km를 자동차로 달려갔다가,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주 큰 유턴을 했습니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던 2박3일간의 꿈테라피를 진행하기 위해서,
양평에 있는 펜션으로 갔습니다.
일정을 조정할 수 없는 코칭이 오전에 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 무렵까지 양평에 도착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많이 바빴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도착을 했는데, 꿈테라피 시작일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여러 일정을 조정해야했고, 먼길을 다시 돌아가야했고, 아침부터 서둘렀던 시간이 아깝기도 했습니다.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벌어진 일이었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책임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담당자에게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일정문제로 못하겠다`라고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짜증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곧 수습이 되었습니다.
계속 짜증을 내기에는, 꿈테라피는 내가 무척 진행하고 싶어하는 일이었고,
그 시간을 기대하고 있을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을 만나고 싶었고,
양평의 가을 하늘과 물과 햇살이 너무도 고왔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될 펜션도 마음에 들었고,
펜션 뒤로 이어져 있는 야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전답사를 했구나,
길도 뻥 뚤린 평일 낮에 남편과 멋진 드라이브를 했구나,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온전히 하루가 더 생겼구나, 하는 생각도
짜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데에 한몫을 했습니다.

양평에서 유턴을 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아름답더군요.
유턴하여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삶에도 이렇게 유턴들이 있구나.
가다가 아니면 이렇게 돌아오면 되는 것이구나.
비록 목적했던 것을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것을 얻기도 하는 것이구나.
어쩌면 그 유턴으로 인하여 유턴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할 것들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 내가 양평에서 유턴을 하여 오늘 하루를 더 집에서 지내면서 얻었던 가장 큰 의미는,
늦은 밤에 찾아온 한 지인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최근 직장생활에서 여러 복잡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지인이
퇴근 후 늦은 시간에 우리집을 찾아와서 우리 부부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2시간 여 동안의 긴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어둡고 무거운 표정으로 왔던 그는 환한 표정과 빛나는 눈빛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다가,
나 또한 최근 내 삶에서 나타나고 있는 심상치않게 반복되고 있는 신호들이 주고 있는
깊은 의미 하나를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를 도운 것만이 아니라, 그도 나를 그렇게 돕고 간 것입니다.

삶에는 어느 한 가지도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 하나, 느낌 하나, 행동 하나가 그냥 일어났다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의 생각이 지금의 현실이 되어 있기도 하고,
작은 느낌 하나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별 것 아닌 듯 행했던 행동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연기의 사슬은 참 강하고 신비롭습니다.

큰 유턴을 비롯하여, 오늘 내가 했던 많은 생각들, 일어났던 느낌들, 행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봅니다.
그것들은 어떤 씨앗에서 연유했던 것들인가,
또 그것들은 어떤 열매를 맺게 할까......

나는 내일 다시 꿈테라피를 진행하기 위하여 양평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