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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보다 무엇이 달라졌나

HIT 632 / 정은실 / 2009-11-19



막내가 단단히 토라져서 잠이 들었습니다.

늘 하던 것처럼 굿나잇 키스를 해주려고 들어갔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아서 찾아보았더니 글쎄 거꾸로 누워있습니다.

뽀뽀를 하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지요.

곁으로 다가갔더니 이불에 얼굴을 파묻어버립니다.

`우리 천사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랬더니 금방 훌쩍이는 소리가 납니다.

`그래도 짜증나는 것 잘 참고 할 일 마쳐서 기특하다. 잘 자.` 하고 나왔습니다.


입술이 거칠어진 것이 보여서, 립글로스를 가지고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냥 놔두면 내일 아침에 입술 아플지도 몰라. 립글로스 바르자.` 그랬더니,

입술을 뾰족하게 내밉니다.

화가 좀 풀렸다는 뜻입니다.


오 분쯤 후에 들어갔더니 벌써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립니다.

화도 풀고, 서러움도 다 풀고 그새 잠이 들었나봅니다.


막내는 몇 달 전부터 학원을 다 끊었습니다.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 축구지도를 받는 것 외에는 다니는 학원이 없습니다.

대신에 집에서 하루 1시간30분 정도 공부하기로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마치지 않으면, 주말에 받을 수 있는 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 상이라는 것이 `컴퓨터 시간`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막내에게는 상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벌칙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기로 한 과제를 11시가 다 되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대충 넘겨주지 않고 제대로 할 때까지 몇 번 반복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몇 십 분을 버티며 그래도 결국 하기로 한 일을 다 했습니다.

다 마치고 나더니, `미운` 엄마 얼굴을 한 번도 안 쳐다보고는 이불 속에 숨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막내를 보며, `많이 컸구나` 싶어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싫은 일도 참고 해내는 힘이 생겼네요.

워낙 감성이 발달된 아이라 울기도 잘 하는데,

오늘은 울먹울먹하기는 했지만 울지는 않고 자기를 조절을 해낸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요즈음 그런 힘이 정말 많이 커졌습니다.


대나무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사춘기의 큰 아이를 보며,

이제 여린 가슴을 제 스스로 다독일 줄 아는 막내를 보며,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을 느낍니다.


우리를 둘러싼 나무와 풀도 어느 사이 가을에서 완연한 겨울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어제보다 무엇이 달라졌나,

막내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