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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이 준 선물 3가지

HIT 660 / 정은실 / 2010-03-10



어제 저녁부터, 때아닌 눈보라가 일더니,

오늘, 새하얀 설경에 탄성을 지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신촌에 있는 병원에 일찍 가야했던지라 운전길은 염려가 되었지만,

평촌에서 과천을 거쳐 남태령을 넘어, 한강 다리를 건너서 가는 길의 길목마다

잘 찍은 사진 속 풍경같은 경치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나서는 길은 늘 그렇듯이,

오늘도 별 것 아닌 어머니 잔소리에 어린애같이 짜증대며 투덜댔지만,

하얀 눈꽃 세상 덕에 짜증마저 금새 잊으며 잘 다녀왔습니다.

아직도 투덜댈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신 것이 참 다행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운전하느라 확인하지 못한 핸드폰에 지인의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눈덮인 세상풍경을 온전히 바라보기에 좋습니다. 교산이랑 등산하면서 즐기세요. 이왕이면 지금^*^`

아름다운 눈을 보면서 나를 떠올려주는 지인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아침까지 없던 새편지가 도착해있습니다.

먼 곳의 친구가 보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따금 살아가는 이야기를 띄워오는 중학교 시절 친구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친구의 글이 참 좋아서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내린 눈이 친구의 마음에서 글이 흐르게 한 것 같습니다.

혼자 읽기 아까운 글이라 이곳에 옮겨놓습니다.

친구의 비밀스런 이야기 하나만 지워버리고 나머지 전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탐스런 눈이 열어준 마음의 문으로 흘러나온 이야기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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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봄눈이 내렸다..

쏙 내민 새싹을 하얗게 덮고있다. 새싹이 얼까싶어 걱정도 된다.

봄눈은 처음인 듯 하다.

눈구경이 어려운 포항에 봄눈이 웬일이야 싶다^^..

아이들과 아이아빠가 나가고 나도 나갔다.

아파트 뒤 성당에서 좋은 사람 불러 차 마시고 눈구경 할까 싶다가 혼자 나갔다.

뒷산 소나무에 뿌려지듯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 사람은 목소리톤이 높은 사람인지라 고요한 마음을 깨트릴 것 같아서^^.


살며시 내리는 눈속에 한참 서있었다.

항상 떠오르는 추억하나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었다.


(중략)


이제 설레임은 없어도 마주보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내 삶속에서 느끼고 호흡을 같이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


한 끼 밥을 건너뛰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사람. 맛있는 된장과 김치만으로 몇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

옷 한 벌로 한 계절을 날 수 있는 사람. 초저녁부터 누웠다하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사람.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는 사람. 고향에 기와집을 지어 살고싶다는 꿈 하나 가진 사람.

맛있는 음식은 식구와 함께 먹고 싶어하는 사람. 술을 마실수 있을 만큼만 마시는 사람.

담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사람. 여자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 생존본능이 강한 사람.

집에서든 밖에서든 여자복이 있다는 사람^^과 살아간다.


햇살이 번져온다.

눈의 순수를 뜨거운 정열이 거두어들인다.

나무에 걸터앉은 눈, 땅에 쌓인 눈은 햇살의 온도로 인해 변신을 한다.

흐르는 물이 된다. 땅속에 스며들어 생명체의 양식이 된다. 흘러흘러 바다까지도 간다.


내게 남은 순수는 바다로 가고 싶다.

양식이 되어 행복하지만 바다에도 가고싶다.

어디에 다다르고 싶은 아침이다.

옆에 앉아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버하는 삶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이든지 중앙고속도로이든지 내 차를 가지고 달리는 삶을 살고 싶다.


친구의 삶이 내 꿈인가싶어 너를 떠올리는 일이 행복이다.

그런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