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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녹듯 그렇게

HIT 628 / 정은실 / 2010-03-11



그저께 화요일 저녁 무렵부터 눈보라가 일었지요.

대학원 강의가 있어서 이동 중이었는데,

30여분 달리는 동안 눈발이 점점 짙어지더니,

두 시간 남짓 강의를 마치고 나왔더니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래도 봄눈인데 금방 녹겠지, 하고 잠이 들었는데,

웬걸,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지난겨울에 어느 눈 내린 날보다 더 소담스런 눈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서울 신촌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설경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도 나뭇가지가 아니라 줄기까지 눈에 덮이거나,

담벼락 담쟁이 넝쿨에까지 눈이 쌓이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전날 거센 바람을 타고 내린 눈이 온 세상을 구석구석 촘촘하게 덮어버린 것입니다.


오후에, 인터뷰가 있어서 다시 시내로 나가게 되었는데,

다시 설경을 보고 싶고 남편에게 설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전철 대신 같이 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멋지다며 감탄을 했지만, 이미 그 설경은 이른 아침의 설경이 아니었습니다.


이 눈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구나 싶더니, 역시나,

오늘도 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갔는데,

응달진 곳을 제외하고는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소담스럽던 눈꽃들이 피었던 자리에 연둣빛 새싹들이 노란 꽃 얼굴들이 뾰족뾰족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 그 모습을 보고 알았습니다!

더 일찍 아침을 열고 더 늦게 저녁을 닫는 태양의 기운이 달구어놓은 대지의 열기,

그 열기를 길어 올려 온힘을 다하여 새싹과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의 뜨거운 기운이,

그렇게도 빨리 그 많은 눈을 사라지게 했다는 것을......


봄눈 녹듯 그렇게,

미움도, 원망도, 후회도, 게으름도, 주저함도, 화도, 짜증도, 걱정도, 불안도, 다 사라지면 좋겠다 싶었는데,

봄눈은 그냥 녹아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봄눈을 녹인 뜨거움이 먼저 존재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다면,

봄눈을 녹인 것은 새봄을 달구는 대지의 열기, 온힘을 다해 싹을 틔우는 나무의 뜨거움이었는데,

우리 마음 안의 차가움을 녹이는 뜨거움은 뭘까......

그것은 ‘사랑’임을 알아차립니다......


아, 온 몸이 따뜻해집니다.

내 몸 어디선가 눈이 녹고 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