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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비 내리는 정자 아래

HIT 639 / 정은실 / 2010-06-21



 

거의 매일 남편과 집근처 산책길을 돌며 밤산책을 하곤 합니다.
그저께 늦은 밤에는 산책을 하다가 비를 만났습니다.
그냥 맞기에는 굵은 빗줄기라서 얼른 공원 안에 있는 정자로 피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우산을 갖고 나와 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리 오래 내릴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오랜만에 비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인적이 그친 공원에 빗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정자 지붕에 닿는 빗소리, 나뭇잎에 닿는 빗소리, 보도블록에 닿는 빗소리,
분명 같지 않은데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는 힘든 그 소리들이 내 가슴에도 떨어졌습니다.

잠시 내렸다 싶은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흠뻑 비에 젖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 아래 비에 젖은 모든 형상들이 참 고왔습니다.
빗줄기들을, 이런 시간에, 이렇게 마음 편안하게 바라본 것이 언제였을까 싶었습니다.

산책 중에 우연히 만난 비가 만들어준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남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산책을 하면서도 늘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비와 정자가 만들어준 작은 공간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참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한참 후에 아이들에게 우산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소리와 빛깔에 그리 감동하지 않았지만(오히려, 감동하는 엄마를 신기하게 쳐다봤지요.^^),
늦은 밤 엄마 아빠와의 시간을 재미있어 했습니다.

밤, 공원, 산책,  비, 가로등, 나무, 소리, 빛깔, 정자, 감탄, 대화, 가족, ......
그 시간과 그 공간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운동은 못했지만, 이제는 키가 서로 비슷해져가는 네 가족이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도 마음도 가벼웠습니다.
선물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삶은 이렇게, 알지 못하는 때에, 작지만 촉촉하게 반짝이는 선물들을 준비하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