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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강의 마치고 기차로 돌아오다

HIT 970 / 정은실 / 2010-06-26


 

지난 목요일, 울산에서 아침 9시30분부터 강의가 있었습니다.
운전하기를 좋아하지만, 안양에서 울산까지 혼자 운전을 하기에는 먼 길이고,
비행기는 혹 기상문제로 결항이 될까 싶어서,
첫 KTX를 타고 대구까지 가서 고속버스를 옮겨 타고 울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 사정으로, 오전 오후 2회의 특강을, 점심시간도 거의 없이 바로 이어서 진행하는 바람에,
연이어 6시간 강의를 했습니다.
마음은 가벼웠지만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는 길,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는 새마을호를 탔습니다.
비행기를 타거나, 대구로 가서 KTX를 이용했으면 훨씬 빨랐을 텐데,
울산역에서 광명역으로 오는 기차를 골랐습니다.

혼자 그렇게 오래 기차를 탄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기차의 기분 좋은 흔들림에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가,
얇은 책 한 권을 다 읽고, 경주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전화도 드리고,
두 아이들과 통화도 하고, 남편에게 뜬금없이 ‘사랑해’ 문자까지 날렸는데도,
바깥 경치에 젖을 만큼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싱그러운 유월의 산과 들이 눈으로 흘러들어오는데,
가슴으로는 기차에 담긴 지난 시간의 추억들이 흘러들어왔습니다.
 
기차에 대한 내 추억의 대부분은, 큰 아이를 경주 친정 부모님이 길러주셨던 3년 동안
한 달에 두 번 아이를 만나러 다녔던 기억입니다.
친정집이 경주역 바로 뒤편에 있었는데, 내가 서울로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이면,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며 친정아버지가 육교까지 배웅을 나오시곤 하셨습니다.
자주, 그 육교 철망 사이로,
내가 탄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도 그냥 서 있는 아이와 친정아버지 모습이 보여서
나는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늘 눈물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고,
아이를 정성으로 길러주신 친정아버지는 작년 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기차로 그 육교를 지나다보니, 남아 있는 것은 육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 그때의 아이 모습, 그때의 내 미안함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또 한참 눈시울을 붉혀야 했습니다.

오가는 이동시간이 강의시간보다 더 길었지만 목요일 울산 강의여행은 나에게 선물이었습니다.
긴 시간 이동한 노고를 생각하지 않게 할 정도로 진지한 학습자들을 만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진한 그리움, 홀로 되신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
늘 더 안아주고 싶었던 큰 아이의 어릴 적 모습,
육아도 일도 공부도 어느 것 하나 놓고 싶어 하지 않았던 조급했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애틋하게 되살아났습니다.

그날, 하루가 길었습니다.
기차 속에서, 하루가 아니라, 15년을 지나왔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보았습니다.
사랑, 눈물, 감사, 고뇌, 갈구, 알아차림, 성장,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나의 서툰 날갯짓들...
 
울산역을 출발한지 4시간 35분여 만에 광명역에 내렸습니다.
마중 나온 남편을 만나며 다시 현재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새벽부터 시작된 강의여행을 마치면서도 몸이 가벼웠습니다.
강의 후의 피곤함도 이동의 피곤함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기, 참 잘 했습니다.
때로는 운전대도, 속도도 내려놓고, 그냥 마음의 흐름을 고요하게 따라가 볼 일입니다.
그 흐름 어디에,
아주 오래 전부터 흘러온, 아직도 나의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내 삶의 물줄기가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에서는 자주 놓쳐버리는, 하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내 안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그 어떤 것들을 그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또 울산을 가게 된다면 다음에도, 운전을 하거나 비행기를 타는 대신, 기차를 타고 돌아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