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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 그 느낌에게 시간을 주라

HIT 525 / 정은실 / 2010-08-05



매달 쓰던 그달의 ‘서원’도 쓰지 않고 지나간 지난 7월,
의도하지 않았던 긴 휴지기였습니다.
강의도 있었고, 코칭도 있었고, 일상의 일도 여느 때처럼 계속 되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멈춤’의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마음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에서 고요하게 비치어 나오던 기쁨, 뭔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6월 중순경부터 찾아온 ‘우울함’이란 감정이 한 달 반 정도나 나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음의 상태는 그대로 몸으로 나타나서,
의욕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한 달 이상 몸살을 앓았습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잘 못 이루고, 평소에는 자주 ‘하하’ 터져 나오던 웃음도 잃었습니다.

푹 가라앉은 상태에 머물기가 힘들었지만,
그 어떤 것도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음을 알기에,
억지로 기분을 바꾸려고 하는 대신에 감정의 흐름에 나를 맡겨놓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외부활동도 집안일도 모두 꼭 해야 할 일들만 하면서,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며, 나를 찾아온 ‘우울함’이란 녀석과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 한 달 반 동안,
운전 길에 라디오에서 아름다운 사연을 듣고 운전이 힘들 정도로 통곡을 하기도 했고,
명상 중에 첫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여름다운 무더위와 열대야 속에서 가을을 느끼기도 했고,
10년쯤 더 살고 난 것 같은 거울 속 내 낯선 모습을 만나기도 했고,
시간 나면 읽으려고 벼르고 있던 여러 책들을 보면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지연 중인 일거리 앞에서도 무심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강의와 코칭들을 별 탈 없이 해낸 것은 참 다행이었습니다.

일상의 자잘한 일들은 나의 관심 밖으로 물러나갔고,
내 삶의 기쁨의 원천이던 가족들도 나에게 에너지를 주지 못했습니다.
내 보람의 원천이던, 강의와 코칭 중의 깊은 소통의 시간도 역시 에너지를 되살려 주지 못했습니다.
뭔가가 가슴 속에서 막혀 있었고,
그 막힘이 일상의 경험들을 예전과 같이 경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며 ‘왜 그러느냐’고 질문하는 남편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언어화가 되지 않는 감정 덩어리였으니까요.

얼마나 오래 가나 한 번 그냥 두고 보자 했더니,
네가 나에게 경험하게 해주려는 것이 무엇이냐 그냥 그렇게 느껴보았더니,
자책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감추려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안아주고 지켜봐주었더니,
어느 사이 한바탕 비를 뿌리고 맑아진 하늘처럼 다시 밝아졌습니다.
우울함도 슬그머니 오더니, 마음의 빛도 슬그머니 다시 나타났습니다.

한 달 반 경험을 돌이켜보니, 그 우울함이 그냥 비를 뿌리며 지나간 것은 아닙니다.
그 오랜 비를 맞으며, 내 안의 것들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쓸데없이 붙잡고 있던 삭은 가지들이 몇 개 떨어져 내렸고, 새싹이 몇 개 돋았습니다.

마음 작업 뒤에 언제나 그렇듯이,
삶에서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가 또렷해졌습니다.
내가 가진 자원과 아름다움이 무엇인가가 더 또렷해졌습니다.
내 부족한 점들에 좀 더 겸손해졌습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또 이런 비를 만나고 안개를 만나고 막다른 길도 만날 수 있음을,
그 비와 안개와 막다른 길에서도 배움이 있음을, 또 한 번 확인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 쉽게 그 이유나 원인을 단정하고 해결하려는 대신에 가만히 들여다볼 것.
왜냐하면 흐려진 물이 맑아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물이 맑아져야 그 밑바닥이 보이니까.
힘든 마음을 쉽게 다스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대신에 따뜻하게 안아줄 것.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안아주는 것이 사랑이니까, 사랑이 곧 치유이니까.
힘들 때 두려움 때문에 그 상황을 서둘러 벗어나려 하지 말고 더 냉정해질 것.
왜냐하면 그래야 두려움 속의 긍정적 의도를 읽을 수 있으니까, 모든 구름 뒤에는 햇살이 가득하니까.

혹, 지금 당신도 비를 맞고 계신가요?
가까이 우산이 없다면, 두려워말고 잠시 비를 맞아보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의 힘이 있고,
이 세상은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모든 경험은 소중하고, 우리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해가는,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