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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지나간 자리의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HIT 698 / 정은실 / 2010-09-03


산책길에 나무들을 돌아보다가 마음이 아팠습니다.

뿌리째 뽑힌 나무,

옆 나무가 넘어지며 덩달아 기울어진 나무,

가지가 부러진 나무,

큰 가지가 부러지며 줄기가 반으로 쪼개진 나무,

멀리서 보기에는 멀쩡해보여도 가까이 가보니 잎이 찢어지고 열매가 거의 떨어져버린 나무......

굵은 나무들만 쓰러진 것도 아니고,

특정 종류의 나무들만 부러진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지역의 나무만 뽑힌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길을 막은 가지들, 부러진 가지들을 옆으로 밀어 정리를 해놓았지만

아직 산책길은 태풍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지나갔나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오후 미팅이 있어서 서울로 나가다보니,

쇠로 만든 도로 안내판들도 다 휘어져버렸더군요.

한참 나무들을 바라보다 보니, 부러진 나무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살아남은 나무들에 대한 대견함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런 거센 바람을 이겨내다니 정말 장하다'라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습니다.

수백년 된 나무들을 영물로 여기고 함부로 베지 않는 것은,

그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낸 놀라운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번 태풍을 겪기 전에는,

오래 된 나무들에 대해서 그런 경외심을 그리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라니 그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었던 거지요.


어제 이른 아침, 천지를 뒤흔드는 바람을 직접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이겨온 그 생명력이 얼마나 장한 것인지.

그래서 나무들에게서 그런 싱그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임을.


산책을 하며, 나무들에게 말했습니다.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에게는 '정말 애썼다.'고,

그 큰 바람에도 제 몸을 곧게 세워낸 나무들에게는 '정말 장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힘든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큰 나무같은 장한 기운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어왔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그런 생명력으로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