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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HIT 411 / 교산 / 2014-01-11


앞의 글에서 여주가 소개했듯이 우리 가족은 하루 1시간 가족이 함께 모여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 1시간 중 10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이 글을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듣기만 한다.

그 10분이 참 묘하다. 내가 말할 때 10분은 대개 짧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남이 말할 때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 (나에게) 흥미로운 내용이면 내 시간 못지않게 짧고 아쉽게 여겨진다. 특별히 재미있거나 감동이 있지 않으면 (물론 나에게) 그 시간이 그렇게 길수가 없다. 졸리거나 짜증이 나기도 한다.

뭔가에 집중하면 그 시간은 순간처럼 짧고, 몰입하지 못한 시간은 영원처럼 길다는 거,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이 동일한 실수의 반복을 좀처럼 막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청중을 생각해서 10분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적어도 여주와 나는 사랑하는 아들들을 염두에 두고 주제를 선정하고 읽을 부분을 발췌했다. 그들의 관심사를 고려했고, 논리적 글보다는 흥미를 끄는 스토리 위주의 글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나의 기대만큼 눈을 반짝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거나 하품을 연신 해대기 일쑤다.

물론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항상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의도와 다른 결과 - 이게 중요하다 - 는 그 안에 무엇가가 있다는 신호이다. 무엇이 말해지려는 걸까.

반복되는 10분의 경험이 알려주는 건 첫째, 재미있을 거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흡인력 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정한 주제가 실은 내 착각이었다는 거다. 철저히 내 관점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흥미였던 거다. 이 단순한 주제 선정의 작업에서 여전히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나기, 자기중심성의 극복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깨치게 된다. 중심의 전환은 머릿속 생각 수준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신발을 바꿔 신어봐야 한다. 몸과 마음이 전일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서 타인으로의 관점의 전환과 나의 상대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완성, 완벽이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지향하고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의 집중하는 힘에 관한 것이다. 10분 동안 전하는 이야기는 그 안에 기승전결이 있게 마련이어서 어느 부분은 담담하고 어느 부분은 뜨거우며, 또 어디는 서정적이고 어디는 논리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정서적이든 지적이든 자극 혹은 흡인력이 떨어지면 쉽게 주의력이 흩어지곤 한다. 잠시 쉬어가는 부분에서는 견디며 다음의 전개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어 보인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 큰 곤욕인 듯하다. 인내하는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 이러한 집중 시간의 단축이 세대 차이의 한 현상인지 광속 시대의 반영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나와 여주보다 아이들의 집중 시간이 짧은 걸 보면 세대 차이로 보이지만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보라), 나 또한 TV 시청할 때 광고시간에 차분히 한 채널에 머물지 못하는 걸 보면 시대 변화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집중력 저하는 상당히 우려할 만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10분 동안 말하고 듣기의 지속되는 경험이,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시작해서 모르는 문제 혹은 질문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기지의 사실을 확인하고 새로운 무지를 발견하게 될까. 다음 주 10분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