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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가을의 기억, '나의 나'

HIT 337 / 정은실 / 2014-10-13

                    나의 나


                                                    이시영(1949~ )


여기에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나는 저녁이면 돌아가 단란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여름이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날아가

몇 날 며칠을 광포한 모래바람과 싸울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비 내리면 가야산 해인사 뒤쪽 납작 바위에 붙어 앉아

밤새 사랑을 나누다가 새벽녘 솔바람 소리 속으로

나 아닌 내가 되어 허청허청 돌아올 수도 있어

여기에 이렇듯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찾을 자료가 있어서 뒤적이다가, 2006년에 스크랩을 해둔 이문재 시인의 글 하나에 눈길이 갔습니다. ‘나의 나’라는 이시영님의 시 한 편을 올려놓고, 이문재 시인은 이런 글을 썼네요.


직장생활을 할 때 상사가 나를 보고 ‘당신 두뇌는 서랍장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각과 생각 사이에 단절과 비약이 심하다는 충고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하덕규의 노랫말 중에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이렇게 얌전히 앉아 있지만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당신뿐 아니라, 내가 쉴 곳도 없다.” [출처 : 중앙일보 &Joins.com]


2006년의 내 마음이 끌렸던 것은 이시영 시인의 ‘나의 나’였을까, 이문재 시인의 짧은 글이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를 잠시 돌이켜보니 두 글 모두에 마음이 끌렸겠다 싶습니다. 그때 나는 프리랜서로서의 생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성장의 기쁨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함께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학교와 기업에서 강의를 하며,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주말이면 녹초가 될 정도로 지쳐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결국 계획에 없던 시간 2주일을 만들어서 훌쩍 일상을 떠나 홀로 먼 곳에서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야 했을 정도였지요. 늘 내재되어 있다가 한 번씩 용암처럼 분출하곤하던 ‘나’,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이 일상의 압력 속에서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되어 나왔던 시기. 꿈의 크기만큼 나 자신에 대한 회의도 컸던 시기. 스스로를 달래던 기존의 어떤 방법으로도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던 시기. 외부적으로도 그 이전의 어느 때보다 가장 바빴던 그 시기에, 내면의 움직임 또한 강렬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 한 편, 그 시에 딸린 짧은 글 한 편에 8년 전의 기억과 그 시간이 지금 내게 남긴 흔적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해야 할 일들을 옆에 밀어놓고 이렇게 오래 사념에 빠져들다니... 가을이군요. 아! 그러고보니, 내가 2주일간 훌쩍 나를 찾아 일상을 떠났던 2006년 그때도 가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