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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을 끌어안기 쉽지 않을 때(J에게)

HIT 911 / 정은실 / 2007-06-28




칼럼란에 쓸까, 자유게시판에 쓸까, 옛날 댓글 아래에 댓글로 달까 잠시 망설였어요.

J의 눈에 좀 더 쉽게 띄도록 자유게시판에 새글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편안한 한 통의 전화처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J에게...

 

내 현실, 내 모습,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기가 쉽지 않다고 했지요. J가 3주나 전에 올렸던 댓글을 내가 이제 봤네요. 일상의 순간순간에 대한 자각을 잘 유지하려고 애써온 시간들인데, J의 글이 올라온줄을 모르고 있었다니 내가 마음을 놓치고 있었네요.

 

... 오늘은 비가 오네요. 자정 지나 이른 새벽부터 내리는 비가 그칠 기미없이 내리네요. 아마 드디어 장마가 시작되려나봐요. 기온이 높은 것도 아닌데, 축축함이 체감온도를 높여서 찬바람 좋아하지 않는 내가 벌써 선풍기를 틀었어요.

 

J, 어떤가요, 요즘 기분은?

 

J의 댓글을 오늘 아침 한참 들여다봤어요. 과거에 나도 자주 느꼈던 쉽지 않음이었고 지금도 때로는 마주치는 느낌이라 그 느낌을 알 듯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한 `쉽지 않음`을 다뤄온 방법이 J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J, 나는 있는 그대로를 끌어안아버리기가 힘들 때, 일어난 현실 그대로와 내가 지각한 바를 구분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내 느낌과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도 들여다봅니다. 그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있는 나의 느낌,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내 몸의 상태를 들여다봅니다. J, 이 내용은 내가 수업시간에 소개했던 현실요법의 선택이론이지요... 그렇게 나의 현 상황을 정리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그 그림을 나로부터 떨어뜨립니다. ... 실제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단지 내 머리 속에 일어났을 뿐인 나의 생각들, 특히 나의 평온한 상태에 도움이 되는 생각들을 나로부터 분리시켜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참 좋은 방법이에요. 그저 그렇게 바라봄 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때로 현실회피용으로 악용할 때도 있지만 ^^ 그냥 이리저리 치닫는 나의 마음에 정지버튼을 누르고 마음이 멈춘 그 작은 틈새로 나와 세상에 대한 자각을 높일 수 있어요.

 

물론 잘 분리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때는 내가 잘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는 나의 보이지 않는 신념들이 내 지각체계 내에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요. 그런 경우에는 억지로 분리시키려 하기 보다 그 신념의 희미한 흔적이라도 잡고 조금씩 더 깊게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보는 것이 방법입니다. 신념에도 뿌리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내가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신념 찾기 조차도 쉽지 않을 때에는 `감사하기`를 해봅니다. 아, 내가 아직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렇게 나를 깨워주는 신호들이 오는구나... 이것은 더 깊은 나로부터 오는 신호구나... 이 쉽지 않은 시기가 지나면 나는 또 한 뼘 더 성장해있겠구나... 내가 어제보다 좀 더 깊어질 수 있겠구나... 그러면 아프면서도 달콤한 `주도적으로 문제해결하기`에 돌입하게 되지요...

 

... 편안하게 쓰고 싶었던 글이 좀 복잡해졌네요, J. 그사이 빗줄기가 더 굵어졌어요. 가만히 눈을 감고 온갖 먼지들을 씻어내며 명상으로 들어가기에 참 좋은 소리네요. 낮은 지대에 사시는 분들이 이 장마를 잘 비켜가시기를 빌며, 오늘은 빗소리 명상을 해봐야겠습니다. 연락없이 오늘 강의 일정을 펑크내신 분들에게 오히려 감사드리면서 말입니다. 덕분에 J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잖아요... ^^

 

참 아름다운 사람 J.I.에게, 여주.